매일신문

[기고] 고령군, 대가야의 옛 영광을 재현하다

고령군 고령읍의 진산(鎭山)인 주산(主山) 정상에 서면 잠잠해 있던 심장이 쿵쿵 뛴다. 대가야를 호령했던 하지왕(荷知王)의 말발굽소리가 저 멀리서 흙먼지를 날리고 지천을 흔들면서 달려오는 느낌이 든다. 강력한 철기를 앞세워 신라와 백제, 고구려 등을 압박하며 세력을 넓히기도 했던 대가야이다.

대가야는 600여 년이나 삼국과 어깨를 겨루며 독립성을 유지했으며, 왕도였던 고령을 중심으로 합천'거창'함양'산청 등 영남지역은 물론 남원'장수'구례'순천 등 호남지역을 아우르는 영역국가로 성장했다. 대가야의 왕은 대왕으로 불리며, 하부(下部)라는 지방을 다스렸다. 하지왕은 479년 중국에 사신을 파견해 보국장군본국왕(輔國將軍本國王)이라는 작호를 받았다. 일본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대가야는 정치'문화'영역적으로 볼 때 가야문화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대가야는 당당히 고대국가로까지 발전한 나라였던 것이다. 영남을 중심으로 호남지역까지 아우르면서 고대문화의 한 축을 이루었던 '대가야'였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三國)시대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그저 '잊혀진 왕국' '신비의 왕국' '철의 왕국'쯤으로 여기면서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다.

이런 대가야가 최근에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대가야가 '잊혀진 왕국'에서 '고대문화의 메카'로 삼국시대가 아닌 '사국(四國)시대'로 한국 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확인된 최대 규모의 순장무덤인 지산동 44호분을 통해 고대의 순장문화의 실상을 잘 전해주고 있다. 가실왕과 우륵이 창제한 가야금은 현재에도 우리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전통 국악기이다. 고대국가 발전의 원동력이자 최첨단 하이테크였던 철기문화는 우리 고대문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대가야의 토기는 부드럽고 안정된 곡선미를, 장신구에서는 정밀한 세공기술을 보여주는 화려함을, 튼튼하고 실용적으로 만들어진 갑옷과 투구에서는 무사의 장엄함을 느낄 수 있다.

고령지역에는 아직도 대가야 시대의 문화유적들이 곳곳에 있다. 주산 정상부에는 사적 제61호로 지정된 '주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사적 제165호로 지정된 '고아동 벽화고분'은 가야지역 유일의 벽화고분으로 유명하다. 고령향교 자리는 대가야 왕들이 살았던 '대가야 궁성지'였으며, 고령초등학교에는 왕이 마셨던 우물인 '어정'이 있다. 주산 능선에는 지산동 44호분과 45호분을 비롯하여 700여 기의 크고 작은 고분군이 있다. 지산동고분군은 2013년 12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이제는 대가야 정체성을 살려 대가야의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 지금까지 꾸준히 대가야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학술회의를 열고 있으며, 한국 고대사를 삼국이 아닌 사국으로 삼는 '사국시대론(四國時代論)'을 학술적으로 확립했다. 또한 지산동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고분군 정비와 국제학술대회 개최 등 다양한 노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올해 3월 22일까지 국립제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고 있는 기획특별전 '대가야의 탐라 나들이'를 통해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전국에 알리고 있다.

이 밖에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한 미래도시 건설을 기치로 고령읍을 '대가야읍'으로 명칭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대가야를 상징할 대표적인 조형물을 주요관문에 설치하는 '대가야 관문상징화 사업'과 16대 520년간 유지된 대가야국의 '종묘'를 건립할 계획이다.

1천600년 전 융성했던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재현해, 고령군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문화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곽용환/고령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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