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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서민 역주행 대한민국] 4.서민 비정규직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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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장그래' 60만∼70만 명…경제활동인구 130만 명의 50%

지난해 말 대구시교육청 앞에서 학교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모여 임금인상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말 대구시교육청 앞에서 학교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모여 임금인상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장그래', 인기리에 방송됐던 한 케이블(tvN) 프로그램('미생')의 남자 주인공이 비정규직의 대명사가 됐다. 2015년 대한민국 비정규직은 '장그래'라는 세 단어로 통용된다. 많은 시청자들이 한 계약직 사원의 고군분투에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주인공 장그래가 당했던 사내 차별과 왕따, 불합리한 계약조건 등에 울분을 토했다. 하지만 냉엄한 세상에 던져진 비정규직의 현실은 장그래보다 더 가혹하다. 이들에겐 '장그래가 아니라 안그래'다.

대구경북지역의 비정규직 종사자들 역시 하루하루가 온갖 차별과 비인간적 대우의 연속이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얘기한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고, 처우를 개선한다는 정부 정책과 각 기관의 사탕 발린 얘기들은 말짱 '황'입니다. 특히 같은 직종이나 회사에서 일하는 정규직들이 '남의 집 불구경하듯'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아 더 화가 납니다."

◆지역 비정규직 종사자들의 서글픔

"성골-진골-6두품-평민-천민, 통일신라시대 때 골품제도가 회사에도 존재합니다."

대구 달서구의 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종사자 강모(45) 씨가 한탄 섞인 목소리로 내뱉은 말이다. 보수부터 승진, 휴가, 보너스, 복지 혜택 등에서 비정규직은 차별받는 평민 또는 천민이나 다름없다. 심지어는 각종 수당을 책정하는데도 불이익을 기꺼이 감내해야 한다.

강 씨는 "정규직들이 설이나 추석에 100%의 상여금을 받을 때, 비정규직들은 달랑 50만원만 받을 뿐 아니라 연차 수당, 야근 및 시간외 수당 등도 정당하게 요구할 수 없을 정도"라며 "더 참기 힘든 건, 같은 회사에서 저보다 일을 적게 하는 정규직들의 '넌 그만큼 주는 것도 다행인 줄 알아라'는 선민의식이나 시선"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계약직, 인턴, 용역, 파견, 업무보조,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형태로 근무하는 비정규직들이 받는 보수는 정규직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비정규직들은 월평균 임금이 100만∼200만원 정도다. 여기에 각종 수당을 더해도 외벌이로는 한 가정의 생계를 꾸려가기도 벅찬 실정이다.

비정규직의 서러움은 평생 따라다닌다. 운이 좋아 정규직이 됐다고 하더라도, 회사에서 밝은 미래를 꿈꾸기엔 한계가 있다. '비정규직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승진 인사철이나 주요부서 요직 발령 시 또다시 좌절해야 하기 일쑤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 된 한 30대 여성 직장인은 "기쁨은 정규직이 되었을 당시 잠시였다"며 "이후 같은 또래에 비해 승진이 3년 이상 늦어지고, 주요 부서로는 발령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고 털어놨다.

◆대구의 비정규직 60만∼70만 명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지난해 기준으로 임시직 30만 명, 일용직 20만 명, 특수고용 10만 명 등 60만∼70만 명의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각종 경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구 전체 경제인구를 130만 명 정도로 추산했을 때, 비정규직이 절반에 육박하는 수치다.

지난해 8월 기준으로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전체 노동인구 1천800만 명 중 45.4%에 해당하는 852만 명이 비정규직 종사자인 셈이다. 절반은 그나마 제대로 사람대접을 받는 정규직 귀족이고, 절반은 기본적 처우조차 보장되지 않는 비정규직 천민이다.

민주노총 대구본부 박희은 사무처장은 정부의 하향평준화식 비정규직 대책과 영업이익을 올리기에 급급해 비정규직을 더 양산하는 대기업의 이중정책을 강하게 질타했다. 박 사무처장은 "정부의 대책은 실효성이 떨어지고, 대구시의 노사정 평화선언도 보여주기식 쇼"라며 "대기업들은 700조원이나 되는 사내유보금을 쌓으면서, 정작 비정규직들의 고용안정이나 처우개선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런 현실 탓인지 노동사회운동 진영은 이달 초에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가칭)를 구성하기로 결의했다.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과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막아내고, 재벌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바꾸겠다는 취지다. 특히 올해는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노동운동진영의 투쟁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비정규직 백화점, 교육청 및 일선 학교

교육청과 일선 학교 역시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숙제다. 대구시교육청의 경우 전체 직원 1만9천327명 중 비정규직은 6천900명으로 35.7%에 해당한다. 경상북도교육청은 전체 직원 3만348명 중 비정규직이 7천965명으로 26.2%에 달한다. 특히 대구시의 경우에는 비정규직이 매년 조금씩 늘어났다.

대구와 경북의 교육청 소속 직원들을 살펴보면 비정규직 종사자들 대부분이 일선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청소, 식당, 경비, 스포츠강사, 도서관 사서, 사무직 보조, 교무 보조, 간호 보조, 전문 상담사, 체육 코치 및 감독, 계약직 교사 등 학교에서는 30가지가 넘는 백화점식의 다양한 비정규직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자원봉사자나 파견, 용역 형태는 아예 비정규직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대구시교육청 행정회계과 장재광 주무관은 "대구의 경우 갈수록 늘어나는 비정규직을 막기 위해 정원(7천 명 내외)으로 관리를 하고 있으며, 처우개선이나 고용안정을 위해 정부 정책과 발맞춰 지속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다"며 "일선 학교에서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이 많은 것은 현재 학교 운영의 현실에선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획취재팀 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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