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운 사람이 임자? 대구 사람은 꼭 주인 찾아 돌려주죠!

주운 물건을 들고 주인을 찾아달라는 대구시민들이 많다. 12일 대구도시철도 반월당역 유실물센터에서 대구도시철도 관계자가 유실물을 정리하고 있다 .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주운 물건을 들고 주인을 찾아달라는 대구시민들이 많다. 12일 대구도시철도 반월당역 유실물센터에서 대구도시철도 관계자가 유실물을 정리하고 있다 .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얼마 전 대구에서 분 '양심'의 훈풍이 늦겨울 추위마저 녹여버렸다. 도심에 뿌려진 800만원의 사연을 들은 시민들이 주인에게 돌려주라며 주운 돈을 들고 지구대를 찾았고, 한 독지가는 돌아오지 못한 돈도 사연이 있을 것이라며 매일신문이 대신 전달해 달라고 500만원을 가져오기도 했다. 모자란 15만원 역시 시민들의 온기로 채워졌다.

'돈다발' 사건이 대구의 양심과 온정을 도드라지게 했지만, 대구시민의 성숙하고 따뜻한 마음은 생활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초라한 경제지표, 안타까운 사건'사고, 우울한 이야기는 삶의 기운을 빼버리기도 하지만 이웃의 안타까운 사연에 손을 내밀 줄 알고, 남을 위해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은 대구를 살맛 나는 도시로 만들고 있다.

◆양심으로 채워진 도서관

칠곡군 동명면사무소 앞 왕복 2차로. 도로를 사이로 마주 보고 서 있는 버스승강장 옆에 마련된 작은 도서관에는 늘 50여 권의 책이 꽂혀 있다. 누구나 버스를 기다리면서 그 자리에서 책을 읽거나 가져가 읽은 뒤 되가져 놓도록 한 일종의 '양심도서관'이다. 이곳은 설치된 지 2년이 됐지만 책이 분실되는 일이 없다. 비가 와 젖은 책은 주민들이 스스로 보수를 하거나 치워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고, 때로는 집에서 보지 않는 책을 많은 사람이 읽도록 꽂아 놓기도 한다.

주민 신길영(37) 씨는 "이 도서관이 생긴 이후 책을 절반 정도는 읽었다. 소장하고 싶은 책들도 많지만 주민 대부분이 좋은 책은 많은 사람이 읽어야 한다며 관리도 하고, 또 집에 좋은 책이 있으면 가져다 놓기도 한다"고 했다.

대구 서구청 1층 민원실의 양심도서관에 있는 책장은 책으로 넘쳐난다. 2008년 9월 구청이 민원처리 대기 시간이 무료한 주민들이 보도록 200권의 책을 꽂아놓았는데, 지금은 400권이 더 늘어 웬만한 도서관 부럽지 않다. 초기에는 책을 가져간 사람이 많아 책장이 많이 비었지만 사라졌다고 여겼던 책들이 어느 순간부터 돌아오기 시작했고, 덩달아 책 기부자들도 늘어 설치 7년 만에 600권이 모이게 됐다. 3개의 책장 앞에 놓인 소파에는 늘 책 읽는 주민들이 있어 민원실 분위기도 확 바뀌었다.

김미경 서구청 종합민원과장은 "한 번은 동화책을 몇 권 기증한 주부가 구청을 방문했다가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감동받아 동화책 전집을 기증하기도 했다"며 "별다른 출납 시스템이 없는데도 책이 갈수록 쌓여가는 것을 보면 이게 바로 우리 주민들의 양심이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다"고 했다.

◆빈 공간 없는 유실물센터

'주운 사람이 임자'라는 말은 대구도시철도에선 통용되지 않는다. 1호선 반월당 환승역 유실물센터에는 주인을 찾아달라며 물건을 주운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유실물 보관함은 1년 365일 빈 공간이 없다.

도시철도 1, 2호선의 59개 역에서 하루 평균 접수되는 유실물은 20건. 휴대전화, 지갑, 가방 등 없는 게 없다. 간혹 지나치게(?) 양심적인 시민들은 이곳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물건들을 들고 찾아오기도 한다. 조경희 대구도시철도공사 대리는 "500원짜리 동전, 과자 한 봉지같이 소소한 물건을 들고 와 주인에게 꼭 돌려달라고 맡기는 사례도 있다. 더러는 일부러 유실물센터를 찾아 그때 맡긴 물건이 주인을 찾아갔는지 묻기도 한다"고 했다.

중구 동성로 3가 중앙파출소 안 유실물 보관함에도 시민들의 양심이 모인다. 휴대전화, 신용카드 등이 주인을 기다리며 보관함에 머물고 있다. 보통 주택가에 있는 파출소에는 분실'습득 신고 접수가 많아야 한 달에 1, 2건이지만 이곳은 하루 평균 8건 내외로 대구 지역 지구대나 파출소 가운데 유실물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습득자들도 동네 주민이 아닌 10, 20대 관광객, 매장 직원, 학원 강사 등 다양하다. 물건 주인이라며 나타나는 사람은 서울, 부산, 경산 등 대구가 아닌 타지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아끼고 소중히 간직하던 물건을 잃어버려 마음이 상했는데, 뜻하지 않게 되찾게 돼 '대구에 대한 좋은 기억을 안고 돌아간다'며 경찰관에게 거듭 감사의 말을 한다.

박찬원 중앙파출소 4팀장은 "유실물 습득자 한 명 한 명이 양심 대구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며 "대구에서 물건을 잃어버리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소문이 방방곡곡에 퍼져 '따뜻함으로 채워진 대구, 반드시 찾고 싶은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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