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삶에 SNS는 그야말로 감칠맛을 더하는 존재였다. 평범한 일상도 SNS에서는 특별해졌고 주변 지인들이 달아주는 수십 개의 댓글은 일상을 화려하게 색칠했다. 인간관계의 폭도 넓어졌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인맥 관리는 물론이고 멀게만 느껴지던 사람들과도 클릭 한 번으로 친구를 맺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감칠맛이 과했던 탓일까. SNS열풍은 최근 SNS피로를 호소하는 움직임으로 변하고 있다. "SNS 없인 못산다"던 사람은 줄고 "SNS 없는 곳에 살고 싶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번 주는 SNS를 떠나려는 혹은 이미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와 함께 '온라인에서의 나'를 잊어달라는 이야기도 들어봤다. 직접 떠나보지 않고는 SNS의 힘을 알지 못한다. 기자가 직접 일주일간 SNS에서 벗어나 보며 일상에 SNS가 얼마나 침투해 있었는지 알아봤다.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SNS결별, 왜?
한때 인터넷을 사용하던 대부분의 네티즌들을 열광하게 하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마다 다양한 서비스로 무장한 채 이용자들을 끌어모았지만, 어느 순간 이상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자신의 삶을 하나에서 열까지 내보이던 사용자들이 멈칫하고 있다. 어떤 이는 아예 SNS라는 공간을 아주 떠나버리기도 했다. 온라인 상에서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던 SNS에 왜 이런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일까.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떠나는 이유 1. 나만 못사는 것 같아서
취업 준비생 김현미(26'가명) 씨는 최근 페이스북 계정을 임시로 닫았다. 계정을 만든 지 4년 만의 일이다. 취업 준비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는 두 번째였다. 그보다도 SNS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만 불행한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SNS는 공부하다 머리 식힐 때 도움이 됐어요. 그런데도 먼저 취업한 친구들이 SNS에 올리는 회식사진이나 직장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초라함을 견딜 수 없어서 SNS를 닫게 됐어요." 온라인에서의 우울함은 김 씨의 오프라인 인간관계까지 덮쳤다. "특히 '회사 가기 싫다'는 친구들의 말이 올라오면 취업 못한 나를 배려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견디기 힘들었어요. 따지고 보면 친구들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히 짜증이 나서 오프라인에서도 만나기 싫어 요즘엔 취업 스터디원들만 만나고 있어요."
SNS가 주로 행복한 순간을 공유하는 용도로 쓰이면서 SNS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피로도가 증가하고 있다. 대학생 김상연(23) 씨는 요즘 들어 부쩍 여자친구와의 싸움이 잦아졌다. 여자친구의 친구들이 올리는 SNS 게시물 탓이다. 그는 "여자친구 주변 친구들이 남자친구한테 받은 선물이나 이벤트 사진을 올리나 봐요. 나만 여자친구한테 잘못해 주는 것 같다는 자격지심 때문인지 싸움이 늘었어요."
한 때 하루에 2~3개씩 게시물을 올리며 활발하게 SNS 활동을 하던 직장인 박현도(28'가명) 씨도 최근 SNS를 그만뒀다. "어느 순간 남들한테 내가 사는 일상을 보여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요. SNS에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게 되는데 생각해보면 진짜 인간관계에서는 좋은 모습, 안 좋은 모습 다 보여주게 돼 있잖아요. 요즘에는 좋아하는 페이지 구독만 하면서 정보를 제공받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어요."
◆떠나는 이유 2. 과도한 광고에 불쾌감 느껴
박은영(26) 씨는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광고성 게시물에 지쳐 SNS를 떠난 케이스다. 자신이 평소 찾아보는 검색어는 물론이고 친구들이 좋아한 게시물까지 반영해 박 씨의 페이스북에 광고를 노출한 탓이다. 박 씨는 "얼마 전 친구가 한 운동화 브랜드에 '좋아요'를 눌렀는지 관심도 없는 내 페이스북에 계속 뜬다"며 "가끔은 성인 광고도 떠서 민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SNS에 올라오는 광고는 사용자와 사용자 친구가 SNS에 올리는 개인정보에 의해 맞춤형으로 제공된다. SNS에는 나이, 성별, 거주지, 직업 등 상세한 개인정보를 올리게 돼 있다. 광고 업체들은 이를 바탕으로 사용자 맞춤형 광고를 올리는데 사용자는 편리함을 얻기도 하지만 때로는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다. 한 SNS 홍보광고업체 대표 한대탁 씨는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과도하게 올리는 광고는 마치 자신을 추적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줘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며 "요즘에는 업체들도 '네이티브 광고'라고 해서 광고에 정보제공 효과를 높여 소비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 씨는 최근 들어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이용자가 옮겨가는 현상도 페이스북 상의 무분별한 광고 탓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현재까지 국내에서는 인스타그램에서 광고할 모듈이 없기 때문에 광고 노출이 없는 인스타그램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떠나는 이유 3. 상(S)사는(N) 싫(S)어!
원치 않은 사람들과 친구를 맺었을 때, SNS는 스트레스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직장생활과 SNS가 한 줄로 엮일 때가 대표적이다. 입사 1년차 김지원(25'가명) 씨는 "1년 내내 직장 상사에게 친구신청을 먼저 안 해 찍힌 상태"라고 말했다. "며칠 전에는 직장상사의 생일이었는데 저 혼자 몰랐어요.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상사가 직접적으로 '지원 씨는 나랑 페이스북 친구가 아니라서 몰랐던 거지?'라고 해서 민망했어요." 김 씨는 "피할 수 있는 데까지 피해 보라"는 주변 사회생활 선배들의 조언 때문에 지금까지 미뤘는데 더 이상 물러설 길이 없는 것 같아 제2계정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SNS 활동이 업무의 연장 선상에 놓이면서 SNS는 더 이상 사생활을 노출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아닌 '감정노동의 장'이 되었다는 푸념도 나온다. SNS에 올라오는 사소한 일상이나 언행이 직장 내의 평판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직장인 최영인(31'가명) 씨는 "얼마 전 상사와 페이스북 친구를 맺은 후로는 놀러 갔던 사진이나 게시물을 단 한 개도 올리지 못하고 있다. 대신 전혀 관심 없는 업무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관심 있는 척을 한다"며 "상사가 올리는 아기 사진이나 재미없는 게시물에도 '좋아요'를 누르거나 다음날 게시물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박한우 교수는 '네트워크 피로증'을 지적했다. SNS에서 이뤄지는 인간관계가 오프라인 관계와는 다르게 관리해야 할 인원도 넘쳐나고 관계의 경계도 모호하다는 설명이다. 실제 학문적으로도 네트워크 상에 친구가 수천 명에 달해도 진짜 친구의 숫자에는 변화가 없다고 확인된 바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로빈 던바 교수(진화생물학)는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진짜 친구의 수는 최대 150명이라 분석했다. 박 교수는 "'던바의 수'(150)를 넘어서는 인간관계가 SNS 상에서 이뤄지다 보니 이를 모두 관리하지 못해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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