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일각에서는 인간을 '여정자 인간'(homo viator)으로 정의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일생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참된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셨다. 기독교인들 역시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하는 소망을 갖고 있다. 특히 보다 밀도 높은 영성생활을 위해 신앙의 원체험을 경험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 방편으로 순례를 통해 깊은 영적 변화를 갈망하며 내적인 불완전함으로부터 새롭게 되기를 바란다. 물론 순례를 통해 내적인 변화나 쇄신이 일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순례체험을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순례길의 대명사는 프랑스 생장피드로프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 이르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로 가는 길)를 들 수 있다. 총 800㎞의 길을 걸어야 하는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한 해 수백만 명이 이 순례길을 찾고 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로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순례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정신적'영적 체험에 있을 것이다. 코스를 완주하고 성당에서 축하의식을 가질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한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이것은 순례자 자신의 자기성찰에 대한 결과이며 또한 영성체험에 바탕을 둔 것이다.
국내 기독교 순례길 중에는 '제주도 기독교 순례길'을 꼽을 수 있다. 제주 애월읍 금성교회에서 협재교회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제주 최초의 선교사인 이기풍 목사의 사역을 따라 '순종의 길'로 명명되었다. 최근 필자가 이 길을 답사해 본 결과, 제주도다운 천혜의 자연환경이 주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기독교 유적의 절대부족으로 여타 올레길이 주는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에 비해 대구에는 기독교 유적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소중한 역사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는 길이 있다. 대구를 대표하는 관광문화 브랜드로 자리 잡은 근대문화골목길 2코스를 걸어보면 누구나 그 길이 '기독교길'임을 느끼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한 해 수만 명이 방문하는 이곳에서 기독교적 정체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구에도 시급하게 기독교 순례길을 제정하고 공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대구 기독교의 시원지인 대구제일교회 구본당에서 출발해 한센병자들을 섬겼던 애락원까지 이르는 길이 우선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대구제일교회 구본당이 기독교박물관으로 개관되어 대구기독교의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서 동산으로 올라가면서 기독교와 민족운동의 상관성을 살펴보고, 동산에 올라서는 초창기 선교사들의 신앙 헌신을 반성하게 된다. 나아가 미션스쿨들과 동산병원을 통한 근대선교, 그리고 달성공원과 신사참배에 얽힌 역사를 통해 교회의 시대적 소명과도 만나게 된다.
굳이 대구기독교 순례길을 명명해야 한다면 '대구 예루살렘의 길'로 해야 한다고 사료된다. 주지하듯이 대구는 한국기독교에서 제2의 예루살렘이었다. 하루속히 대구기독교 순례길이 제정되어 관광이나 답사를 넘어 방문하는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영성을 회복하는 신앙체험의 장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박창식 달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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