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심후섭의 "옛날 옛적에"] 임금보다 키가 크다니

벽에 눈금을 그어놓고 그 눈금보다 키가 큰 사람은 지나다닐 수 없게 하는 나라가 있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니?

옛날 어느 곳에 키가 1미터 5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임금이 다스리는 나라가 있었어.

"임금보다 키를 작게 해야 관리가 될 수 있다."

이 나라에서는 관리가 되려면 임금보다 키가 작아야만 하였어.

그래서 집집마다 아이들을 작게 키우려고 난리가 났어.

"너는 하루 두 끼만 먹어야 해."

"배고파요."

"그래도 안 돼. 네가 벼슬자리에 나가야 우리 모두가 배곯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어."

"우선 굶어 죽어요."

"우리 집은 논밭이 없잖니? 네가 관리가 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어. 그러려면 키가 작아야 해."

어떤 집에서는 음식도 가려 먹였어.

"너는 국수같이 긴 음식을 먹어서는 안 돼!"

"저는 국수가 제일 좋아요."

"그래도 안 돼. 국수는 길어서 먹으면 키가 크게 될지도 몰라."

"그럼 콩나물국을 주세요. 속이 답답해요."

"콩나물국도 안 돼. 콩나물도 길이가 길잖아!"

이 나라에서는 발이 자라지 못하도록 신발도 작은 것을 신겼어.

"아이고 답답해요."

"안 돼. 발이 크면 키도 따라서 클 거야."

병사들도 키가 작아야만 뽑힐 수 있었어.

"병사들은 키가 크고 힘이 세어야 하지 않겠소?"

"어림도 없는 소리! 임금보다 키가 큰 사람은 어느 누구도 궁궐로 들어올 수 없소!"

대신들은 날마다 키를 가지고 말다툼하였어.

궁궐에는 임금보다 작은 사람만 드나들 수 있도록 문을 만들어놓고 그 문을 자연스럽게 지날 수 있는 사람만 드나들게 하였어.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무릎을 굽혀 키를 낮추었어.

"아이고, 힘들어. 무릎을 가릴 수 있는 옷을 좀 지어주시오."

이 나라의 옷가게에는 날마다 무릎을 가릴 수 있는 긴 옷을 주문하는 사람들로 북적였어. 그리하여 아랫도리를 가릴 수 있는 치렁치렁한 긴 옷이 유행하게 되었어.

궁궐에서 하루 종일 무릎을 굽히며 다니던 신하들은 집에 와서도 발을 제대로 뻗을 수가 없었어.

"여보, 그러다가 궁궐에서 그 버릇이 나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집에서도 무릎을 굽히고 있어요."

"아이고, 다리야. 집에서도 제대로 펴지 못하다니! 병이 나지 않을 수가 없도다!"

"여보, 그래도 참아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먹고살 것이 없잖아요."

"아이고!"

이 나라 사람들은 책을 읽어 지혜를 가꾸기보다는 오로지 키를 낮추는 일에만 신경이 모아져 있었어. 농사를 지어도 길이가 짧아야 하였어. 짜리몽톡한 오이, 한 뼘도 안 되는 당근 등….

그 뒤, 이 나라는 어떻게 되었을 것 같니? 네가 만약 이러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면 너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심후섭 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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