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서애의 징비록 처칠의 회고록

지난 14일부터 주말 대하드라마 '징비록'이 KBS1 TV에서 시작됐다. 초반 분위기는 대박 조짐이다.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없는 시대, 리더십다운 리더십이 나타나지 않는 답답함을 반영하듯 사람들을 TV 앞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과거를 통해 대리만족을 구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귀에 쏙 들어오는 요즈음이다.

징비록(懲毖錄)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 동안 조선 반도 전역과 1천만 명이나 되는 조선의 백성을 전화(戰禍)의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넣은 피눈물나는 역사 기록물이다. 특히 징비록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후대 역사가에 의한 간접적인 해석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란을 맨 앞에서 이끌며 천신만고 끝에 승전을 일궈낸 명재상(名宰相),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 직접 보고 겪은 전쟁의 전체 조망기여서 그렇다.

'징비'는 시경(詩經)의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豫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이 출전이다. 서애는 이 책에서 다시는 이 같은 전란을 겪지 않도록 조선 조정의 여러 실책을 반성하고 앞날에 대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물론 서애가 우려했던 사건은 이 책을 쓴 지 38년 만에 다시 일어난다. 임금이 오랑캐라고 손가락질하던 이들에게 이마가 찢어지도록 머리를 조아리는 수모를 겪는다. 임금이 이 정도였으니 백성들이 겪은 고초는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징비의 교훈을 잊은 탓이다.

징비록의 무게감은 단지 국보 132호로 지정된 것으로 설명을 다할 수 없다. 임진왜란은 16세기 말 동북아시아의 질서를 뒤흔든 대지진과 같았다. 일본은 이 전쟁 이후 도쿠가와 막부 시대를 열게 된다. 조선에 원병을 보내준 명(明)나라는 청(淸)나라에 대륙의 지배권을 넘기게 된다. 이런 대사건들이 임진왜란을 계기로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진왜란은 조선 반도에서 일어난 국지전이 아니라 작은 세계전쟁이기도 했다.

징비록을 보면서 처칠 영국 총리가 쓴 '2차 세계대전 회고록'을 생각한다. 서애의 징비록은 처칠의 회고록에 견줄 만한 역사성과 국제성 그리고 문학성을 갖고 있다. 히틀러의 망령 앞에 풍전등화의 신세가 된 영국을 살려낸 처칠은 은퇴 후 세계대전의 참상을 기록으로 남겨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전쟁 당시 영국은 돈도 무기도 자원도 사람도 부족했다. 미국의 지원이 없으면 승산이 없었다. 1941년 2월의 BBC 라디오 연설에서 처칠은 "광대한 대양(大洋)을 사이에 두고 우리에게 전해지는 그들의 사랑을 깊이 느낍니다. 우리는 그 사랑에 값해야 합니다. 우리를 믿어주십시오. 우리는 결코 실패하거나 꺾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약해지거나 지치지 않습니다. 장비를 주면, 우리가 끝장내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전세는 뒤집혔다.

처칠과 서애의 리더십은 닮았다. 처칠은 영국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고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 내 전쟁에 승리했다. 서애는 당파로 찢긴 조선의 조정을 하나로 이끌며 도탄에 빠진 백성을 어루만지고 민심을 수습했으며 명나라의 군사 지원을 받아내 왜군을 몰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처칠이 대영제국의 총리로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외교 무대에서 활약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공국의 재상으로 사대(事大)의 대상이었던 명나라와의 외교전을 통해 원병을 이끌어낸 서애의 외교력과 리더십은 더욱 빛을 발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2002년 처칠은 BBC 선정 위대한 영국인 100인 가운데 1위에 오른 반면 서애는 그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드라마 방영을 계기로 국난 극복의 명재상 서애 류성룡의 리더십과 그 증거물인 징비록이 평가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반갑다.

징비록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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