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에는 빙벽 등반이 아닌 조금 색다른 등반을 소개할까 한다. 바로 산악 스키(스키 등반)다. 보통 등산은 올라가는 활동, 스키는 스키장에서 정해진 슬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활동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산악 스키는 스키를 신은 채 산에 오르고, 설원을 활강해서 내려오고, 평지를 걷는 활동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다른 말로 스키 등반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의 몇몇 산과 폐장한 스키장, 울릉도 성인봉, 한라산의 장구목 등 장소에서 겨울에 한시적으로 산악 스키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낮은 언덕이 많고 눈이 많이 오는 북유럽에서는 우리가 자전거를 타듯 자연스러운 이동 수단으로 자리 잡은 것이 산악 스키다.
원래는 스키도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서 내려오는 활강만을 위한 스포츠가 아니었다. 자신이 걸어서 올라간 만큼만 하강하는 스포츠였는데 문명의 발달로 리프트와 인공적인 슬로프를 만들면서 편하게 하강만 하는 스포츠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스키는 원래 태생 자체가 산악 스키인데 리프트와 인공 슬로프가 등장하면서 활강 스키와 구분하고자 부르는 이름이 돼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눈이 많이 쌓인 산에서의 스키는 등산, 등반과는 떼기 어려운 친숙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스키장이 생기기 전에 '스키'라는 물건을 가장 먼저 들고 들어와서 전파한 사람들도 산악인들이다. 그만큼 스키는 산악의 한 분야였고 지금도 그 맥을 같이한다.
여기서 스키를 타봤거나 스키에 대해 아는 독자들은 궁금한 점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슬로프를 내려오기만 할 수 있는 스키를 신고 어떻게 산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지, 바닥이 미끄럽고 발목이 고정돼 있어서 어색할 텐데 어떻게 스키를 신고 산을 오를지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산악 스키는 일반 스키와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우선 스키 바닥에 '씰'(Seal)이라는 것을 부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일반적인 스키를 신고 씰 없이 경사진 곳을 오를 때에는 당연히 오르기 힘들 것이다. 스키 플레이트 바닥과 설사면 사이의 마찰력이 적기 때문이다. 씰은 눈에 닿는 쪽은 한쪽으로만 빳빳하게 짧은 털이 뉘어서 나 있고, 스키 플레이트에 붙는 쪽은 끈적끈적한 접착테이프로 돼 있다. 그래서 씰을 스키 플레이트 바닥에 부착한 채 스키를 앞으로 밀면 자연스럽게 밀리고, 스키를 뒤로 당기면 털이 일어나면서 바닥의 눈을 붙잡는다. 이런 씰이 있기 때문에 스키를 신고 한 발씩 스키를 앞으로 밀면서 경사진 곳을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경사진 산을 오르는 데는 또 다른 비밀이 있다. 일반 스키와는 달리 뒤꿈치가 분리된다. 경사진 곳을 오르는 데 스키 부츠의 뒤꿈치가 스키에 붙어 있으면 몸을 앞으로 기울여 오르는 동작을 취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산악 스키는 뒤꿈치가 스키에서 분리되고, 심지어 경사지를 오르기 편하게 뒤꿈치 밑부분의 굽 높이를 조절할 수 있다. 경사가 심할 때는 뒷굽을 높게 해서 사면 경사와 관계없이 발바닥을 중력과 수평하게 할 수 있어 편한 보행이 가능하다.
이런 산악 스키의 진가는 당연히 설산에서 발휘된다. 일반 등산화를 신고 갈 경우 푹푹 빠져서 러셀을 해야 진행 가능한 곳을 산악 스키는 스키의 넓은 단면적을 이용해서 쉽게 쭉쭉 밀어가면서 눈에 빠지지 않고 진행한다. 그만큼 체력과 시간이 절약된다. 또 정상과 같은 목표한 높은 곳에 오른 후 하산을 할 때에도 편하다. 걸어서 올라갔을 때는 또다시 발이 푹푹 빠지는 길을 걸어서 내려와야 하지만 스키를 신은 상태에서는 스키장에서처럼 활강해서 내려오면 그만이다. 걸어 내려오는 것과 비교해서 시간이 몇 배나 차이가 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산악 스키는 이처럼 장점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철에 한시적으로, 한정적인 장소에서만 즐길 수 있는데다 장비가 다른 스키에 비해 대중적이지 않고 가격도 다소 비싼 편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에서 동호인의 수가 아직은 많지 않고 저변 인프라 또한 넓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아시안컵 산악스키대회를 매년 겨울 우리나라(2월 중에 용평리조트 혹은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다)에서 개최하고, 횡성 청태산에서도 매년 산림청장배 산악스키대회를 여는 등 산악 분야에서도 스키가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온몸으로 동력 없이 산을 오르고, 경치를 만끽하며 활강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매력을 가진 산악 스키. 주변에서 쉽게 접하기는 어렵지만 스키를 즐기고, 또 산을 즐기는 동호동락 독자라면 한 번쯤 도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김재민(대구산악연맹 일반등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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