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속칭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무려 2년 6개월여 만인 이달 3일 국회를 통과했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공직자는 직무 관련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원, 1년에 300만원 이상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및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법안 적용 대상 범위에는 공직자 외에도 언론인'사립교 교원 및 임직원도 포함된다' 등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제기되는 "김영란법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포괄적 입법이다" "공직자뿐만 아니라 언론인과 사립교 교원 및 임직원, 심지어 그들의 배우자까지 포함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은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법이 시행되면 그동안 우리 사회의 '미풍양속'으로 여겨져 온 관습까지도 제동이 걸리게 돼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우리 사회에 불신과 상호 경계감을 만연시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나, "김영란법이 언론 길들이기의 수단으로 악용되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 우려된다"는 주장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일부 공직자들의 "박봉 속에서 사명감으로 일해온 공직자들이 세금 도둑에 이어 잠재적 범죄의 대상이 돼야 하냐"는 푸념과, 일부 재계의 "접대 문화가 더 음성화될 수 있고 대관 업무를 할 수가 없다" "내수 위축과 경제 활성화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에까지 나아가면, 그동안 우리나라에 부패가 너무나 관행화된 것 아니냐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는 경제력을 기준으로 볼 때 GDP 기준 세계 14위, 무역 규모로는 8위이지만, 청렴도나 반부패지수의 경우에는 40위권을 넘어서고 있다. 이는 매우 심각한 불균형으로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병들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는 청렴도나 반부패지수 역시 상위권으로 올라서야 한다. 세계적인 경제 위상에 걸맞은 사회윤리 질서가 갖추어지지 않고서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미국 계약법에는 '약인'(consideration)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일방의 약속에 대한 반대급부가 있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계약관계에 있어서 최소한의 대가성이 없다면 그 약정은 무효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사인 간의 거래에서조차 아무런 반대급부 없이 약속한 내용은 구속력이 없어 무효라는 것이다. 금품 수수에 있어 공직자 등이 직무와의 관련성 없이 교부받은 금원이 있다면 그것도 역설적으로 약인이 없는 무효의 금품 교부이므로 이는 무효이고 반환하거나 법적으로 제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 변호사 직업윤리 과목 내용에 '특정 사건의 담당 판사와 그 사건의 일방 당사자를 대리하는 변호사는 그 재판 기간 동안 어떠한 만남도 금지되어 있으며 일방이 주최하는 모임에 일절 참여할 수 없고, 만약 다른 사람이 주최한 모임에 우연히 동시에 참석하게 되었다면 그 장소에서 서로 간 어떠한 대화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해당 당사자들은 직무 연관성이 없는 금전의 교부에 대해서 처벌한다는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할 수 있고, 친인척이나 지인이 자신이 담당하는 직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스스로를 잘 관리할 수 있을 정도로 양심을 지키고 훈련이 잘되어 있다고 강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일반 서민, 국민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김영란법 제정을 계기로 '부패한 나라' '마당발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원칙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나라' '청렴한 나라' 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한다.
이철우/법무법인 법여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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