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담뱃갑에 경고문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6년이다. 세계보건기구 권고에 따라 '건강을 위해 지나친 흡연을 삼갑시다'라는 문구를 인쇄했다. 지금의 '경고: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에 비하면 표현의 강도가 매우 낮다. 하지만 표현이야 어떻든 이 문구를 의식하는 흡연자는 사실상 거의 없다.
하지만 활자에 비해 사진과 그림은 시각적 효과 면에서 크게 차이 난다. 흡연의 폐해를 경고하는 흉측한 사진과 그림, 그래픽은 당장 눈을 자극한다. 이 때문에 캐나다는 2001년 담뱃갑에 흡연을 꺼리게 하는 경고 사진과 그림을 처음 도입했다. 캐나다 보건당국 자료에 따르면 경고 그림 의무화 이전인 2000년 24%이던 흡연율이 2006년에는 18%로 떨어졌다. 청소년 흡연율은 3분의 1로 줄었다. 2002년 시작한 브라질도 31%에서 22.4%까지 흡연율이 급감하는 등 큰 효과를 봤다.
호주는 '담배는 당신을 죽입니다'(SMOKING KILLS)와 같은 문구와 함께 태그를 단 시체 사진 등을 넣었다. 또 담뱃갑을 연두색으로 통일시켰는데 흡연자에게 담배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2006년, EU 국가 중 경고 그림을 처음 시작한 벨기에는 소름끼치는 종양 사진과 시꺼먼 폐 사진 등을 담뱃갑에 인쇄했다.
국내 담뱃갑 경고 그림 관련 법안이 처음 발의된 것은 2002년 16대 국회 때다. 이후 11번이나 발의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 국회도 진통 끝에 보건복지위를 통과한 법안이 어제 법사위에서 또 발목이 잡혔다. "담배를 꺼낼 때마다 끔찍한 그림을 보게 하는 것은 흡연권 침해"라며 반대가 거세지만 정부가 '담배규제기본협약'을 비준한 마당에 계속 미루는 것도 문제다.
선진국 흡연율이 20%대인데 비해 우리나라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45%가 넘는다. 자기 의지로 담배를 끊는 1년간 금연 성공률이 고작 2~5%라는 점에서 국가가 적극 금연 캠페인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해 담뱃값 인상으로 32%가 금연, 36%가 흡연량을 줄였다는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경고 그림은 흡연율 감소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한때 애연가들 사이에 담배 케이스가 유행했다. 가죽, 알루미늄 재질의 케이스에 담배를 담아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제 흡연자도 정 피우겠다면 그림을 넣든 말든 개의치 않고 대범하게 케이스 등 대안에 눈을 돌리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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