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죄가 아닌 아이의 가난

A군은 올해 16살, 고등학교 1학년이다. 가정형편 때문에 30㎡ 남짓한 방에서 지난 3년 동안 혼자 살았다. 25만원짜리 월세가 1년 이상 밀리고, 석 달 전에는 전기도 끊겼다. 학교 급식 외에는 대부분 끼니를 라면으로 때웠다. 동네 통장의 이야기를 듣고 복지사가 찾았을 때 A군의 방은 라면 봉지 등 쓰레기가 가득했다.

복지사는 외지에 있는 아버지에게 여러 차례 연락해 도울 방법을 설명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가정문제라는 이유였다. 그래도 복지사는 긴급복지 지원금을 받도록 돕고, 구청과 연계한 기관의 도움으로 방역과 청소를 했다. 쓰레기가 1t이나 되었다 하니 그동안 A군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어떤 이는 전기요와 이불을, 구청 직원들은 가스레인지와 자전거, 반찬 등을 지원했다.

오래전 썼던 한 선배의 칼럼을 기억한다. '밥 굶는 어린이들에게'라는 제목이었다. 경산의 한 초등학교 전교생 1천600명 가운데 도시락을 싸올 형편이 안 되는 아이가 300명이 넘는다는 기사가 실린 뒤였다. 그 선배는 도시락을 못 싸오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아파했다. 여기에다 외부 독지가가 도시락을 지원하겠다고 해도 자존심 상한다며 안 받겠다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에는 화까지 냈다.

"나도 뒷날 어른이 되면 힘든 사람들에게 도시락을 주겠다. 아니, 더 많은 학생에게 되갚겠다. 그러려면 튼튼하게 자라야 하고, 그러자면 지금 도시락을 받아야 한다"고 썼다. 그리고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은 지금의 자존심이 아니라 뒷날 어른이 됐을 때 남을 돕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자존심이라 했다.

물질 만능주의로 '가난이 죄인 사회'가 됐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이유든 아이를 제대로 챙길 형편이 안 되는 부모 책임이다. 가난한 아이는 아무런 죄가 없다. 도움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다른 이의 도움을 받는 것이 부끄러울 것도, 자존심 상할 것도 없다. 떳떳하게 도움받고, 열심히 자라서 나중에 열배 백배로 갚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힘들면, 손을 내밀어야 한다. 국가가 자치단체가 열심히 해도 개인의 사정을 다 알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지기 전에 '도와달라'고 소리쳐야 한다. 도움을 받은 뒤 나중에 더 크게 베풀어 '복수'하면 된다. 덧붙여 A군을 챙긴 복지담당 공무원이 고맙다. 그리고 염치없지만, A군 같은 아이들이 또 없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봐 주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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