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성구 중학교 배정 '판도라 상자'

신학기마다 '교육 특구' 후유증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사는 L씨는 요즘 아들의 중학교 배정 문제로 심기가 불편하다. 집 인근 중학교를 두고 차로만 10분 이상 걸리는 중학교로 배정을 받았기 때문. 인근 중학교는 성적이 좋은 학생이 몰리기로 유명하고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곳이어서 L씨도 아들이 이곳에 배정받기를 기대했는데 물거품이 됐다.

L씨는 "우리 아파트에 사는 학부모들 중 자녀가 인접한 중학교가 아니라 다른 곳에 배정됐다는 이들이 여럿이다"며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중학교를 배정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이해 못 할 수성구 중학교 배정" 꼬리 무는 의혹들

'교육 특구'라 불리는 수성구가 심한 신학기 후유증을 앓고 있다. 중학교 배정이 끝나자 '일부 아파트 특혜설'과 '배정 기준 임의 변경' 등 온갖 괴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능에서 경신고 출신 4명이 만점을 받은 이후 올해 '신학기 후유증'은 유독 심하다.

특히 상대적으로 인기도가 떨어지는 A중학교로 배정받은 신입생 7명이 진단서를 받아 다른 학교로 전학 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부모들의 신경은 더욱 예민해지고 있다.

최근 수성구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범어동 B, C중학교 인근 아파트 주민 사이에서는 중학교 배정 방식이 달라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 단지 학생 중 상당수가 인접한 B, C중학교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먼 다른 학교로 배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범어네거리 인근에 있는 아파트 단지 학생 중 상당수가 B, C중학교로 배정받았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범어동 한 주민은 "B, C중학교 인근에 사는 학생들은 다른 학교로 배정받고 먼 곳에 사는 학생들이 B, C중학교로 배정받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이 때문에 '교육청 고위직이 개입했다' '주민과 공무원 사이에 돈이 오갔을 것이다' 등 갖은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고 했다.

인근 부동산 중개사는 "이곳 주민 상당수가 자녀 교육을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이사를 왔는데 원하는 학교에 배정을 받지 못하면 억울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며 "신학기만 되면 학교 배정과 관련한 온갖 소문이 떠돈다"고 말했다.

실제 특정 아파트 단지가 교육청을 상대로 학군 변경을 위해 조직적으로 로비를 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는 실정이다.

▶만연한 '위장 전입'…경제력 따라 방법도 갖가지

학부모들 사이에서 원하는 학교에 자녀를 배정시키려 주소를 이전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고위직 인사에 대한 청문회에서도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워낙 사례가 많다 보니 별다른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실거주 여부를 확인하는 조사가 강화되자 아예 인기 학교 주변 아파트를 구입해 '두 집 살림'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범어동 한 부동산 중개사는 "진학을 위한 두 집 살림의 경우 부인과 자녀는 방과 후나 학원시간 중간에 짬짬이 들르는 사례가 많다"며 "실제로 학교 인근의 오래된 소형 아파트는 타인에게 위장 전입이 노출되지 않는 '두 집 살림용' 부동산 계약이 이뤄진다"고 귀띔했다.

또 예전에는 단독주택 방 하나를 빌려 주소를 이전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은 취사와 주거가 가능한 원룸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른 부동산 중개사는 "월세를 내는 원룸은 학군을 배정받은 후 한두 달 뒤에 방을 빼기가 용이해 지난해부터 전입용 수요가 늘고 있다"고 했다.

원하는 학교에 가기 위해 중학교 배정 이후 이사를 하는 사례도 있다.

타 지역에서 수성구로 이사를 오면 집 근처 학교로 전학이 가능해 일부 학부모는 수성구에 살다 타지로 이사를 간 뒤 자녀가 중학교에 입학한 직후 다시 수성구로 'U턴'을 한다는 것.

일부 학부모들은 학군 배정 잘 받는 집을 '바통 터치'한다. 일단 배정 결과가 '안전'하다고 확인되면 친한 학부모끼리 정보를 공유하며 집을 이어받는다. 사립초등학교 6학년 자녀를 둔 한 어머니는 "학모들 11명이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교육 정보 등을 나누는 모임을 하는데, 여기서 4명이 이미 중학교 배정을 위한 '조치'를 취했다"고 전했다.

▶수요-공급 불일치 학군…교육 당국 "추첨 배정 원칙 지켰다"

수성구에서 벌어지는 '학군 전쟁'은 인기 있는 특정 학교 수용 규모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발생한다.

학부모들의 선호도가 높은 학교는 극소수로 한정돼 있고 학급 증설도 불가능하지만 주변에 입주하는 아파트가 늘면서 취학 대상 학생은 증가하기 때문이다.

범어동 한 초교 교사는 "B, C중학교는 다른 학교보다 학생들의 학력 수준, 학부모의 눈높이가 높은 곳"이라며 "공부 욕심에 무슨 방법을 쓰든 이곳에 자녀를 보내려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지만 학교가 이들을 모두 감당할 수 없으니 온갖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교육 당국은 추첨 배정 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고 해명했다.

수성구를 관할하는 동부교육지원청에 따르면 중학교 배정 방법은 1, 2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우선 학교별 입학 정원의 40%는 학생의 지망(1, 2지망)에 의해 무작위 추첨 배정하고 나머지 입학 정원은 교통 편의 등을 고려해 추첨 배정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지역별 학생 분포도 및 학생 수용 시설 여건 등을 고려한다.

동부교육지원청 관계자는 "1차 배정 때 2지망은 1지망에 탈락했을 때 다음 수순으로 고려되는 자료가 아니라 1지망 학생이 부족한 경우에 한해 이용되는 자료"라며 "학생 배정 과정에 외부 압력 등은 미치지 않고 투명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이석수 기자 sslee@msnet.co.kr

채정민 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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