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윤정우(가명'42) 씨. 겉으로 보기엔 건강해 보이지만 집 바깥으로 나가기도 쉽지 않은 상태다. 크론병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어서다. 소화관 전체에 걸쳐 어느 부위에서든지 발생하는 만성 염증성 장 질환인 크론병 때문에 하루에도 화장실을 수십 번씩 드나들고 한밤중 응급실을 찾아갈 만큼 심한 복통에 시달린다. 두 아이와 1급 장애를 가진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정우 씨는 아픈 몸이 원망스럽다. "어릴 적부터 책임감 하나로 살아왔는데 지금은 제가 오히려 짐이 된 것 같아 가족들에게 미안하죠. 병원에서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데 엄두도 내질 못하겠어요."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정우 씨
정우 씨는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 그가 태어나기 훨씬 전 전신 화상을 입어 얼굴과 온몸에 화상 흉터가 남은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집 밖에 나서는 것조차 꺼렸다. 학교에도 이모가 엄마라며 대신 찾아왔었다.
넉넉하지 않았던 집안 형편은 정우 씨가 중학교 2학년 무렵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더욱 기울었다. 화상과 함께 지체장애까지 있는 어머니는 일할 만한 건강상태가 아니었고, 어렸던 정우 씨는 집안의 가장이 됐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어요. 힘들기는 했지만 당연히 아버지도 제가 책임지고 보살펴야 한다고 마음먹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정우 씨는 일터로 향했다. 일용직 근로부터 각종 부품 공장 등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곳은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며 가족을 돌보기 위해 노력했다. 눈만 뜬 채로 다른 일상생활을 전혀 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간병비며 어머니의 병원비, 생활비까지 겨우 20대 초반이었던 정우 씨가 벌어오는 돈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만 했다.
가족을 돌보며 일만 하고 살아왔던 그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찾아왔다. 20대 중반에 가정을 꾸리게 된 것. 아내는 정우 씨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받아줬다. 정우 씨에게도 기댈 곳이 생겼고 두 아이까지 얻었다. 성실하게 일하며 조금씩 모은 돈으로 작지만 아파트까지 장만하면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 됐다.
하지만 곁을 지켜줬던 아내가 그를 떠나면서 정우 씨의 미래도 산산조각이 났다. 오랫동안 모셨던 아버지까지 돌아가시면서 "아픈 시부모를 모시는 생활과 가난이 견디기 힘들었겠죠. 제가 못나서 떠나간 건데 원망도 못해요."
◆크론병 때문에 망가진 가족의 삶
아내가 떠나고 정우 씨에게는 연이어 불행이 찾아들었다.
오랫동안 일했던 자동차 부품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일자리를 잃게 됐다. 어머니와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그는 포기하지 않고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은 돈으로 작은 식당을 열었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마음 하나로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오로지 일만 했다. 하지만 식당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고 정우 씨의 스트레스도 점점 늘어만 갔다.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한 달에 몸무게 20㎏이 빠지기도 했다. 그러던 1년 전쯤 정우 씨는 참지 못할 정도의 심한 복통과 구토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찍은 그의 소화 기관 사진에는 온통 하얗게 염증이 생겨 있었다. 소화 기관에 염증이 발생하는 크론병이었다. 염증이 심한 소장 쪽은 협착까지 생겨 수술까지 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장 식당 문을 닫고 아파트를 담보로 받은 대출만 남아있는 상태에서 정우 씨는 수술을 결정할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병을 알리고 싶지 않은 것도 수술을 받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어요. 그리고 빚만 잔뜩 있는데 무슨 돈으로 수술을 하겠어요."
얼마 전 정우 씨는 편지로 아이들에게 투병 사실을 알렸다. 아이들과 끌어안고 펑펑 울면서 정우 씨는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완치되는 병도 아니라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데 아이들에게 짐이 될까 미안해요. 어머니도 나이가 들며 점점 건강이 나빠지는데 제대로 모시지 못해 죄송하고요. 요즘엔 복통 때문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밤잠을 설쳐요."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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