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느지막이 '아점'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선다. 내일이 청명, 모레가 한식이니 선친 산소에라도 다녀올까 해서이다. 청명에 가나 한식에 가나라는 말이 있듯이 일요일에 가도 별일이야 없겠지만, 이렇게 하늘이 꺼무레하니 혹시 비라도 길어져 내일까지 이어진다면 아예 나서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어 미리 나선 것이다. 산소로 가는 길이 그리 먼 길도 아니어서 집에서 20분 정도면 충분하니 마음먹었을 때 다녀오자는 마음으로 나선 것이다.
하늘이 어느새 낮게 내려앉아 있고 바람까지 이렇게 스산한 걸 보니 예보가 맞긴 맞을 모양이다. 미리 나서길 잘했다.
교회 묘지에 도착하니 산 아래에는 자동차가 한 대뿐이다. 날씨가 이러니 청명 한식을 앞둔 토요일인데도 성묘객들이 오지 않은 모양이다. 산길을 올라 산소를 찾아갈 때까지도 인기척이 하나도 없다. 이 넓디넓은 산속에 나 혼자라니. 하기야 이런 을씨년스런 날씨에 누가 이런 산속까지 오려 하겠는가.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듯이 짙은 무채색인데 소나무 가지 사이에서는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바람이 어지럽게 불고 있다. 공기는 제법 쌀쌀하기까지 하여 도저히 봄날씨라고는 할 수 없는데 아무리 청명 한식이라 한들 선뜻 집을 나설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장갑을 끼고 잡초를 뽑기 시작한다. 아직 이른 봄인데도 잡초는 어떻게 이렇게 잘 자랐을까. 낮인데도 바람이 세어서인지 선득하다. 한참을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풀을 뽑는데 저만치서 인기척이 난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인 모양이다. 아까 아래에서 본 자동차의 주인일 게다. 산 위에서 한 남자가 내려오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등에 누군가를 업고 있다. 제법 가파른 지대이고 마사토가 많은 산길이라 미끄러울 텐데 하고 자세히 보니, 남자의 등에 업힌 사람은 머리가 백발인데 아마 그의 노모인 모양이다.
남자도 예순은 넘어 보이는데 어찌 저렇게 노모를 업고 다닌단 말인가. 아무리 할머니라 하지만 이런 비탈에서 무겁기도 할 텐데, 나 혼자서 내려갈 때도 미끄러워 늘 조심하는 길인데.
남자는 발걸음도 재게 내 앞을 지나쳐 산길을 내려간다. 남자의 등에 업힌 할머니는 그의 등에 얼굴을 착 붙인 채 엎드려 있다. 무척 편안한 표정인데 아들의 등이 참 따뜻한 모양이다. 그렇게 산 아래까지 내려간 남자는 그제야 노모를 내려주고 등 뒤에 두 손으로 잡고 있던 지팡이를 할머니에게 건네 주었다. 지팡이를 건네받은 할머니가 허리를 편다. 잠시 그 자리에서 숨을 돌린 후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나란히 산모롱이를 돌아 사라져 갔다. 아무도 없는 교회 묘지에서 채 몇 분도 되지 않는 시간,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내 눈은 그 두 사람을 놓치지 않고 바라본다. 그 스산하던 바람이 어느 순간 멈추어버린 듯, 느껴지지 않는다.
나 어릴 때 나를 업어 키우셨으니, 이제 백발에 허리 굽은 당신을 제가 업고 갑니다.
지난 주말 성묫길에서 본 짧은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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