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 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부분. 『김남주 시전집』 창비. 2014)
시인의 삶과 시인의 시는 우연히 만날 뿐이다. 자신의 삶으로,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시를 형성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김남주의 시는 내게 불편했다. 시인 김남주는 없고 투사 김남주, 의미화된 김남주만 남아 있었기 때문. 그러나 가끔은 시인의 삶과 고통이 너무 깊어, 시와 시인의 삶이 들러붙어 있는 경우가 있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다.
김남주 시인은 이내 가라앉고 말, 금세 사라지고 말 '돌멩이 하나' '불씨 하나'가 되고자 한다. 게다가 그 돌멩이와 불씨는 '역사의 무게'도 없고 '어둠의 영역'을 밀어낼 힘도 없다 했다. 그럼에도 이 시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 무의미가 비관으로 끝나지 않고 죽음을 향한 투쟁을 통해 비극적으로 승화하기 때문. 김남주 시의 힘의 바탕에는 이것이 깔려 있다. 삶의 비극성. 비극성은 우리 삶에 주어진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어떠한 초월도 자신의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 그저 담담히 소멸을 향해 싸워가는 영웅의 감성이다. 시인은 삶과 투쟁이 죽음과 '함께 있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 그렇게 세상과 싸우고 있다. 미래란 소멸하면서 나타나는 현재들의 효과이므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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