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자체가 있다. 그 도시는 2010년 원자력발전소 유치를 신청했고, 정부는 2012년 부지 평가 등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신규 원자력발전소 예정구역으로 지정 고시했다. 하지만 지역 내 여론은 분열되었고, 원전 건설은 지자체 선거의 주요 쟁점 공약이 되었다. 선거 이후 새로운 시장과 시의회는 주민투표로 이 문제를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원전 건설은 국가 사무에 해당하기 때문에 주민투표법상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었고, 선거관리위원회는 주민투표 관리 요청을 거부했다. 따라서 자율적으로 투표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진행한 주민투표에서 주민 67%가 참여한 가운데 투표자 85%가 반대했지만 법적 요건은 갖추지 못했고, 정부는 주민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지자체가 있다. 이 도시에는 현재 6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운영되고 있다. 2기의 신규 원전이 건설 중에 있으며, 또 다른 2기가 착공 예정으로 2023년에는 모두 10기의 원전이 가동될 예정이다. 이곳 역시 원전 건설에 따른 지원 대책에 대한 의견 차이로 15년 이상 타결이 지연되어 왔다. 하지만 정부와 한수원은 지난 2014년 이곳에 2천800억원을 지원하기로 지자체와 합의했다. 서명식에 참석한 국무총리는 "우리나라 에너지 수급과 지역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상생 발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원전과 같이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한 시설을 유치하는 지역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인센티브와 범정부적 지원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전자의 지자체는 '삼척'이고, 후자는 '울진'이다. 지역적 특수성 등 서로 다른 사정은 있겠지만 두 지자체는 원전 유치에 대해 극명한 갈림길을 걸었다. 우리 영덕은 이 둘 사이에 어떤 길을 걸을지 교차점에 서 있다. 지난주 영덕군의회 원자력특별위원회는 지역주민 1천500명을 대상으로 신규 원전 유치에 대한 여론조사를 진행했고, 여론조사 결과를 이번 주 중으로 임시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여러 언론에서도 보도했듯이 질문 문항의 편향성이나 조사 방식의 문제점으로 영덕주민의 여론이 정확하게 반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영덕군, 군의회, 경북도, 한수원, 정부 등은 이번 여론조사 결과가 의미하는 바를 잘 살펴, 영덕 주민의 뜻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특히 원전 건설 및 운영 주체인 한수원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달라진 군민들의 인식을 고려하고, '안전 최우선'을 위한 끊임없는 소통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군민들에게 확신을 주어야 한다.
삼척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주민투표를 위해 수억원의 예산을 사용했지만, 지역주민들의 분열과 갈등의 후유증은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원전 건설 정책의 변화를 가져온 것도 아니다. 또한 국책사업이 지자체장이나 의회의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번복되어서는 안 된다. 지자체는 지역 내 부정적인 여론이 있다고 해서 중앙정부와의 약속을 깨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며, 중앙정부 역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민의를 수렴하는 진지한 소통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앞선 두 도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사실 총리의 영덕지역 방문 시 범정부 차원의 지원은 약속대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영덕군이 건의한 도시가스 공급 조기 완료, 신강구항 개발 추진 등 9개 사업이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시피 중앙정부를 신뢰함으로써 지역발전의 좋은 계기로 삼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원전 건설 시 지역경제 활성화와 함께 고용창출 효과는 물론이고 원전 유치에 따른 법정 지원금과 지방세수 증대 효과로 살기 좋은 영덕을 건설하는 데 앞장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금 우리 영덕은 갈림길에 서 있다. 하지만 시간은 충분하다. 부족한 건 의지이다. 찬반 양측이 자신의 의견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심도 있는 토론 과정을 통해 지역주민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완섭 전 영덕군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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