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부패의 싱크홀, 비리의 그늘

'성완종 스캔들'이 싱크홀(Sink-hole)처럼 정국을 나락으로 몰아넣고 있다. 웬만한 스캔들에 눈도 깜짝하지 않을 정도로 이골이 난 국민이지만 총리에서부터 국회의원,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줄줄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온전한 정신 가진 국민이 있다면 기적이다. 금품 전달 메모에 이름이 올라간 인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검은 커넥션이 드러나지는 않을까 숨죽이며 검찰 수사를 지켜보는 정치인'고위공직자가 과연 얼마나 될지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다.

하지만 이만한 일에 오금이 저린다면 대한민국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자격이 없다.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부끄러운 적이 있지만 파렴치한 일은 하지 않았다"고 둘러댔다.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는 이완구 총리도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했다. 물론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잘못한 일은 있으되 형편없는 사람으로 손가락질 받을 일은 하지 않았다'고 강변해도 국민 귀에는 자기변명으로 들린다.

성 전 회장이나 이 총리가 결코 염두에 두지 않았겠지만 비리와 부패의 그늘은 한 개인의 도덕적 판단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톰 하트만의 '2016 미국 몰락-탐욕과 부패, 그리고 어리석음'에 이런 구절이 있다. '권력과 자본을 독점한 소수는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나라가 파탄 나도록 약탈해왔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장본인으로 정치'경제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권력 수단을 획득할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꼬리가 드러난 이번 스캔들과 비교해 정말 모양과 냄새가 전혀 다른가.

하트만은 책에서 미국의 대폭락을 전망했다. 동시에 미국 붕괴의 배후로 '경제 왕당파'를 지목했다. 경제 왕당파는 약탈형 정치가, 은행가, 기업가, 억만장자, 파시스트 등 경제 위기를 부추기고 이런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해 부를 축적하려는 세력이다. 이 같은 소수 특권층의 탐욕과 부패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 상황과 비교해보면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정치인과 기업인, 공직자의 부패와 도덕적 해이는 경제 불황을 더욱 깊게 하고 소득 양극화, 정치 불신, 사회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지구상 어느 국가도 예외 없이 맞닥뜨리는 문제이지만 우리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1990년대 영국의 주요 정당들도 부패 스캔들로 몸살을 앓았다. 영국인들의 정치 혐오증은 극에 달했다. 1996년 한 여론조사 결과 유권자의 3분의 2가 보수당을 "저속하고 불명예스러운 당"이라고 비판했다. 집권 보수당 의원 상당수가 뇌물을 받고 의정 질의를 하거나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등 돈에 골몰했다. 역사가 에드워드 기븐이 '부패의 싱크홀'로 묘사한 17세기 영국과 판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기븐은 '로마제국의 쇠퇴와 멸망'에서 로마의 멸망에 영향을 준 다섯 가지 요인을 꼽았다. 높은 세율, 무계획적인 재정지출과 낭비, 군비확장과 인구감소, 비정상적인 쾌락추구, 이혼율의 급속한 상승, 그리고 (종교의) 부패다. 한국의 현재 상황과 비교해볼 때 어느 것 하나 옆으로 빼놓을 게 없다. 부패는 제국도 무너뜨리는 지렛대다.

성완종 스캔들은 이전부터 흘러온 구정물이 아니다. 또 이대로 그냥 흘러갈 구정물은 더욱 아니다. 원전 비리와 세월호를 침몰시킨 관피아, 방산 비리, 자원 비리 등 온갖 구정물이 더해져 만들어진 비리와 부패의 저수지다. 국회가 김영란법을 통과시키면서 1년 6개월간 시행을 미룬 이유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구정물을 조금이라도 피해보려는 몸부림이다. 박근혜정부가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지금은 그 구정물에 언제 우리가 빠져 죽을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부패의 싱크홀 입이 더욱 벌어지기 전에, 비리의 그늘이 더 짙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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