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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대구의 네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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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長安)에 30여 만의 인구가 살았는데도 고월이 추축(追逐'친구끼리 서로 오가며 사귐)하던 친구란 7, 8명에 지나지 않았다. 고월이 우인으로 허하고 상종하는 사람은 양주동, 이상화, 오상순, 유엽, 손진태, 현진건, 이경손 등으로 그 외에 그가 교유하던 우인을 나는 모른다."(백기만, '고월과 상화' 중에서)

대구출신 시인 목우 백기만(1902 ~1967)은 많은 문인과 사귀었다. 그 중 1, 2살 차이인 같은 고향의 세 사람과는 각별했다. 가장 먼저 세상을 뜬 시인 고월 이장희(1900 ~1929), 1943년 바로 오늘(4월 25일) 각각 서울과 대구에서 생을 마친 소설가 빙허 현진건(1900~1943), 시인 상화 이상화(1901~1943)다.

모두 일제 식민치하 굴종과 변절의 삶을 거부하며 버텼다. 고월은 부호 친일 아버지가 총독부 관리가 되라는 부탁을 뿌리치고 가난과 고난을 견디다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동아일보 사회부장이었던 빙허도 손기정 일장기 말소 책임으로 강제퇴사 후 변절 대신 지조를 지키며 힘든 삶을 마감했다. 상화는 독립항일 활동을 벌이며 피신생활을 마다치 않고 '상화'란 아호에 걸맞게 불꽃 같은 뜨거운 일생을 살았다.

세 친구 모두 광복을 보지도, 꿈도 못 펴고 짧고 한 많은 삶을 끝냈다. 이들과 동고동락, 영욕의 세월을 함께한 목우만이 조국 광복을 맞았다. 그리고 1951년 '상화와 고월', 1956년 '씨뿌린 사람들'이란 기록으로 세 친구를 증언했다.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친구로서 해야 할 도리로 그러했을 것이다.

목우는 '상화와 고월'이란 글에서 두 사람을 '초창 시단의 두 개의 명성(明星)'이라 표현했다. 목우는 "상화와 고월에 관한 것이므로 내가 그들과 제일 가까웠던 만큼 당위(當爲)의 의무를 느끼고 쓴" 것임을 밝혔다. 또 빙허와 관련, "생활이 곤란하였을 때 기미(期米'현물 없이 쌀을 파고 사는 일)에 손을 댄 일이 있으나…생활이 얼마나 궁하였고 그 궁상을 불의와 욕스러운 일 즉 친일적인 길과 아부하는 길을 가까이하지 아니하고 자력으로 타개해보려는 데서 선택한 일책(一策)"이라며 지조의 삶을 증언했다.

목우의 기록으로 우린 네 친구의 우정을 좀 더 잘 알게 됐다. 대구두류공원 인물동산엔 네 문인을 기리는 비(碑)가 나란히 있다. 죽어서도 함께하는 운명이 아름답게 보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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