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남구에서 식당을 하던 김은자(가명'55) 씨는 지난해 9월 신용카드 결제단말기를 들여놨다. 손님 대부분이 카드 결제를 선호하고,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 제공업체(VAN사'밴사)가 단말기를 무료로 설치해 준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강이 나빠져 지난달 식당을 그만둔 김 씨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들었다. 채권추심업체로부터 단말기 대금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은 것이다.
자초지종을 알고 보니 밴사가 건넨 단말기 양도서류에 '저축은행 할부금융 신청서'가 포함돼 있었고 해당 저축은행이 '관리비' 명목의 단말기 할부금이 입금되지 않자 해당 채권을 채권추심업체에 팔아넘긴 것이다. 저축은행과 밴 사가 짜고 신용카드 가맹점주를 우롱한 것이다.
밴사는 신용카드회사와 가맹점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기업이다. 언제, 어디서든 신용카드 결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결제 단말기를 유지'관리한다. 국내에선 한국정보통신(KICC), NICE, KSNET 등 16개 업체가 운영 중이다.
밴사는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시가 50만~100만원)를 가맹점주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척하면서 양도서류에 저축은행 할부금융 신청서를 끼워넣었다. 밴사 판촉사원의 말만 믿고 서류에 서명한 가맹점주는 자신도 모르는 새 단말기를 할부로 구입한 처지가 됐다. 가맹점주들이 매달 밴사에 지불하는 '관리비'(1만원 내외)가 사실은 단말기 할부금이었던 것이다. 밴사는 신용카드 결제 건당 70원에서 120원의 수수료를 챙기기 때문에 별도의 단말기 관리비가 비쌀 이유는 전혀 없다.
이 과정에서 밴사는 저축은행에서 36개월 원리금 균등상환조건의 대출을 일으켜 카드 결제 단말기 값을 일시에 챙겼다. 저축은행은 저리의 가맹점 매출 입금 통장을 유치하는 한편 밴사가 물어온 할부금융으로 땅 짚고 헤엄치기 식 영업을 해 왔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저축은행과 밴사가 서로 업무협정을 맺어 처리한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며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의 가맹점 관련 할부금융 실태와 부실채권 양도 실태를 전수 조사하고 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는 밴사를 관리 감독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저축은행은 자신들의 사기판매로 발생한 부실채권(할부금 미입금 사례)이기 때문에 이를 자체손실로 처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채권추심업체에 팔아넘겨 가맹점주들을 괴롭히고 있다. 채권추심업체의 독촉을 받은 가맹점주들은 대부분 잔여 단말기 값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매달 내는 단말기 관리비가 진정한 의미의 관리비인지 아니면 단말기 할부금인지 여부는 가맹점 매출 입금통장을 관리하는 금융기관에 문의하면 확인할 수 있다.
유광준 기자 jun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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