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내가 살던 그 주택은 밤이면 동네 고양이들의 천국이 되었다.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비밀스러운 건지, 소리가 그토록 자연의 무궁한 영감의 신호라는 것을, 이전엔 크게 깨닫지 못했다. 한밤중 암'수고양이들의 짝짓기 울음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기묘한 아이 울음소리 같다. 눈을 감고 뜰 안 가득 잎사귀에 떨어지는 봄비 소리를 청 마루에 앉아 듣는 것은, 시선일미(詩禪一味)의 경지에 다름 아니다. 나는 그 집에서 식물이 어둠을 선호한다는 것을 오랫동안 응시하면서 직관한 바 있다. 고통 속에서 인간의 내면이 다져지듯, 식물 역시 어둠 속에서 새 길을 찾는다. 알고 보면 이 모든 자연의 세계가 하나의 시였다. 당시 나는 쓰지 않고선 배길 수 없는 병증으로서 '기양'을 느꼈다. 일상에서 일어난 찰나의 편린들을 어떻게 시 속에 모을 수 있는지, 끊임없이 사물의 안팎을 탐색했다.
그러던 유월 어느 아침이었다, 희한한 광경을 나는 그 집 뜰 안에서 목격했다. 밤색 바탕의 털에 부리는 흑갈색을 한 어미 참새가 새끼 다섯 마리를 데리고 황매 덤불 속에 온 것이다. 무슨 수다를 떠는지 새끼들은 연방 시끄럽게 째액째액, 짹짹거리며 노랑 부리를 연신 놀려 댔다. 어미는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나뭇가지와 돌로 쌓은 축대 위에서 차례차례 나는 연습을 시켰다. 그러고는 높은 무화과나무 꼭대기에 날아 올라가 침입자로부터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망을 보기도 했다. 그때 나는 새의 학습 장면을 보고 참 놀랐다. 조심조심 창문을 열고 자연의 그 비밀스러운 광경을 종일토록 지켜보았다.
한낮이었다. 홀연, 앞집 지붕 위로 도둑고양이 한 놈이 혀를 핥으며 개살궂은 표정으로 나타난 게 아닌가! 천지도 모르고 새끼들은 덤불 속에서 나래를 치며 야단법석이었다. 순간 새끼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고양이 놈, 살기 뻗친 눈빛으로 덤불 쪽을 노려본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다. 망을 보던 어미 참새가 휙, 하고는 앞집 지붕 위 고양이 눈앞에 날아가 앉는 게 아닌가. 정말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고양이 앞발 20㎝ 앞에서 어미 참새는 갑자기 자신을 잡아보란 듯 막춤을 추고는 놀려댄다. 그러고는 날카로운 앞발로 고양이 녀석이 탁, 하고 허공을 치면 어미 참새는 뒤쪽으로 물러나고, 약발이 오른 고양이는 더욱 세차게 앞발로 허공을 긁어댄다. 그때마다 어미 참새는 아슬아슬하게 뒷걸음질쳐댄다. 숨 막히는 생사의 긴장감이 거의 10분쯤 반복되었다. 앞집 지붕에서 시작된 고양이와 어미 참새 간의 사투는 옆집 지붕에까지 이어졌다. 이윽고 새끼들이 안전하다고 느낀 어미 참새는 포로롱 날아올라 고양이 주변을 한 바퀴 돌더니, 안도의 눈빛으로 제 새끼들 있는 덤불로 날아가는 게 아닌가. 옆집 지붕 위에 혼자 남은 도둑고양이 녀석은 얼뜬 표정으로 몇 번 제 머리를 흔들더니 어슬렁거리며 사라졌다. 이렇듯 자연과 생명의 비밀은 '지금-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그곳이 고통의 자리건 즐거움의 자리건 스쳐 지나게 되면,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법이다.
김동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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