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복 군주·해동의 군자' 칭송 받은 의자왕

학계에서 의자왕 재평가 움직임//한때 수십 개 성 빼앗은 군주/중국에서는 '해동증자' 칭송

삼국지 인물 중 손해를 본 사람으로 조조를 꼽는다. 정사(正史)에서는 가장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 그가 소설 속에서는 간웅(奸雄)으로 비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사서에서 가장 저평가된 인물은 누구일까. 백제 연구가들은 의자왕을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집권 초기 그는 야심 찬 정복군주였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왕위에 오른 후 영토 확장에 나서 40여 개 성을 빼앗았고, 20년 재위기간 동안 모두 100여 개의 성을 수중에 넣었다고 한다.

그는 국제적인 신망가, 인격자였다. 중국 사서에는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해 '해동의 증자'로 불렸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온다. 또 사후에 추증되는 왕명이 '의자왕'(義慈王)인 점도 그의 인격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근거다. 물론 집권 초중반까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의자왕은 앞서 언급한 대로 잘못된 역사관, 식민사관의 큰 희생자였다. 승자 중심, 신라 중심의 역사에서 그의 행적이 평가절하되었던 것이다. 또 삼천궁녀, 낙화암 같은 후대에 지어낸 이야기들이 그의 망국 스토리에 덧붙여져 그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된 측면이 있다.

소설에서 저평가된 조조는 그나마 정사에서 명예를 회복했다. 그러나 의자왕은 정사(삼국사기)에서 홀대 받고 세간에서도 왜곡된 이미지로 비치고 있으니 그에 대한 평가 역시 왕조의 운명만큼이나 비극적이다.

한상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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