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상돈의 소리와 울림] 박근혜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1951년 서울생. 경기중고
1951년 서울생. 경기중고'서울대 법대. 중앙대 법대 교수'학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메르스 환자 확인 후 6일 지나 대면보고

인사 실패·소통 부재 세월호 사건 판박이

준비 안된 장관 임명 국격마저 떨어뜨려

개혁 과제 책임질 힘 있는 인사 기용해야

메르스 사태가 좀처럼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이번 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어 부끄러울 지경이다. 정부는 세월호 침몰 사건을 계기로 국민안전 시스템을 구축하고 공직기강을 바로잡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메르스 사태는 박근혜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메르스 환자가 확인된 후 6일이 지난 5월 26일에야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 사실을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게 대면으로 보고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일 비로소 메르스에 대해 언급했는데, 당시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는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정쟁을 벌이고 있었다.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심야 기자회견을 갖고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서울시가 나서겠다고 밝히자 박 대통령은 박 시장을 우회적으로 비난했다. 메르스 확산이 크게 우려할 바가 아니라면서 정보공개를 거부했던 보건복지부 장관은 7일에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 명단을 발표했다. 병원 명단을 일찍 공개했더라면 메르스 확산을 통제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이 나오고 있다.

정부 관련 부처는 무능할뿐더러 책임지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으니, 그 점에서 세월호 사건을 꼭 닮았다.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를 들여다보면 그 바닥에는 박근혜정부의 인사 실패와 소통 부재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박 대통령은 고만고만한 사람들을 장관으로 대거 임명했다. 그중 몇몇은 청문회에서 낙마했다. 다행히 청문회를 통과한 장관이라도 함량부족이란 평을 듣는 장관이 적지 않았는데,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윤진숙 씨가 대표적 경우였다.

이명박정부 들어서 해체되었던 해양수산부를 부활시켜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선 역량 있는 인사를 장관으로 기용했어야 했다. 해운항만과 수산 업무 외에도 해경을 지휘하는 엄청난 일을 국'과장 역할도 감당하기 어려운 연구원 출신에게 맡겼으니 그 부처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었다. 해경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함정을 지휘해 보지 못한 사람을 해경청장에 임명했으니, 그런 청장이 지휘하는 해경이 세월호 침몰 같은 긴박한 상황에 대처하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에 윤진숙 장관이 경질됐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박근혜정부 전체가 웃음거리로 전락할 뻔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 장관은 정부 연구기관에서 연금 문제를 주로 연구했던 경제학자 출신이다. 문 장관은 보건 문제에 대해선 문외한이나 다름없었고, 연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며 살아온 그에게 정무적 판단력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박 대통령이 그를 장관으로 발탁한 이유는 공무원연금 등 공적 연금을 개혁하기 위함이었는데, 그런 목적이라면 연금 개혁 태스크포스의 책임자로 임명했어야 했다. 연금 국장 정도의 보직을 주었으면 무리가 없었을 인물을 보건행정도 책임져야 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해서 전염병 사태를 한껏 키웠고, 이로 인해 국민 건강은 위협받았으며 대한민국의 국격은 추락하고 말았다.

세월호 침몰과 메르스 사태에서 보여준 정부의 지리멸렬한 모습은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대통령은 자기가 공약으로 천명한 개혁 과제를 책임지고 이행할 수 있는 비중 있는 인사를 장관으로 발탁해서 해당 부처를 이끌고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런 인사를 장관으로 기용하지 않았다. 별다른 준비도 없이 발탁된 장관들은 관료들에게 휘둘리기 마련이니 개혁은 애당초 가능하지 않았다. 수석비서관도 대통령과 대면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니 대통령과 장관 사이에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

이런 시스템이라도 평상시라면 정부는 그런대로 굴러간다. 하지만 이런 정부는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와 개혁을 할 수 없으며, 세월호 침몰이나 메르스 같은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위기를 관리할 수 없다. 메르스에 대해 박근혜정부가 우왕좌왕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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