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요가 창시자 이보인 선생…1960년대 불모지 대구에 요가 씨 뿌려

대구 법조인 의료인들이 모두 제자로

1960년대 대구에 요가의 씨를 뿌린 이보인 선생. 새전북신문 홈페이지
1960년대 대구에 요가의 씨를 뿌린 이보인 선생. 새전북신문 홈페이지

대구 요가사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보인(73) 선생이다. 이 선생은 1960년대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대구에 요가가 뿌리내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전북 김제 출생인 이 선생은 각종 무술이 30단에 이르는 무도인이었고 호남에서도 알아주는 '주먹'이었다고 한다. 전북대 총학생회장을 지낼 정도로 리더십도 뛰어났다.

호남의 이름난 '건달'이 어떻게 대구로 오게 되었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워낙 실력이 출중한 덕에 요가센터는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지역 법조인, 의료계, 교육계 인사들이 이 선생에게 요가를 배웠다. 최면술에도 탁월했고 한방, 침술에도 뛰어나 많은 수련생들이 병을 고치고 건강을 회복했다고 한다.

당대에도 고수급 실력이었지만 현상에 안주하지 않고 늘 연구하는 자세로 후학들의 귀감이 되었다. 일본 고마자와대학원에서 '요가와 선불교 비교 연구'로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1977년 우연한 기회에 미 하버드대학에서 동양의학을 주제로 특강을 했는데 그 강연에 매료된 교수, 의사들이 이 선생을 아예 대학에 눌러 앉혀 버렸다. 대학 측에서 서양의학과 동양사상의 결합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보스턴에 정착한 후 현지에 '새로운 건강센터'(The new health center)를 차렸다. 그의 구상대로 동양의학, 서양의학, 자연의학이 어우러진 통합의학의 시작이었다. 미국 전역, 캐나다 오타와, 몬트리올을 돌며 200여 회의 세미나, 강연을 열어 동양의 대체의학을 알렸다. 서양의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독특한 프로그램은 입소문을 탔고 각지서 협진 요청이 쇄도했다. 하버드대병원, 플로리다 파킨슨암센터와 협진에 참여했고 국내에선 원광대와도 MOU를 맺었다.

호남인이면서 아무 연고도 없는 대구에서 10년 넘게 요가를 뿌리내려 지금도 각계각층에서 많은 제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많은 후학들이 지금도 선생의 우렁찬 기합소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선생과 대구의 인연도 '결가부좌'만큼 단단하다 하겠다.

한상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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