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국가 '세계 행복지수' 10위권
한국 교육과열 조장 문화 재고해볼 때
지나친 경쟁보다 칭찬·존중 필요 시점
근면·여유 융합된 삶의 방식 만들어야
30년 전 남미로 출장 가는 길 비행기에서 LA 한인 도매점에서 일하다 고향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는 어느 멕시코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처음엔 자기가 일하던 가게 주인의 부지런함과 교육열을 칭찬하는 듯하더니 나중엔 그건 '미친 짓'이라면서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 주인이 돈을 그렇게나 벌면서도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하며 여행 한 번 안 가는 것이 이상한 모양이었다. 내가 "그야 저축해서 자식들 교육을 잘 시키기 위해서 그러는 것 아니냐? 그게 왜 나쁘냐?"고 하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럼 자기의 삶은 어디 있는거냐? 그렇게 자기 자식에게만 아낌없이 투자하면 그 아이는 어려운 줄 모르고 돈을 쓰게 될 것이고 그것도 남이 아닌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 아니냐? 그게 교육이냐?
30년이 지난 지금을 보자. 중남미의 웬만한 나라들은 30년 전의 한국인 평균 소득 수준을 훨씬 상회하고 있고 경제 성장률이 한국에 비해 빠른 나라도 있다. 우리도 이젠 많은 이들이 그네들처럼 제법 주말 여가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서로 상대방을 향해 '미쳤다'와 '게으르다'를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년 여러 기관에서 발표하는 세계 각국의 행복지수 조사 결과를 보면 중남미 국가가 항상 10위권 안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 갤럽이 조사한 항목 중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는 물음이 있다. "어제 온종일 존중받았는가?" "많이 웃었는가?"
30년간 이어온 그 '교육열'만큼 우리 기성세대가 정말 진정한 교육을 하고 있는가 되돌아볼 때이다. 순위를 매기고 줄 세우는 것을 우리는 교육이라는 미명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명문 학교에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많이 입학만 시키면 명문고, 명문중이라고 칭송하며, 자녀의 적성은 가리지 않고 이름만 그럴 듯한 회사에 취직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나름의 삶이 아닌 남의 눈을 의식해서 사는 삶을 우리 자식 세대에게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 일컫는 남미 우루과이의 무히까 전 대통령의 어록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우리는 발전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려고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동정보다는 공정한 기회가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몸소 실천을 통해 국민을 감동시켰다. 포퓰리즘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그를 '현자'라고 했다 한다.
우리는 정부, 언론, 교육 기관 등 모든 곳에서 경쟁시키고 서열 매겨 상주고, 벌주는 일을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끊임없이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살게 되었다는데 스트레스가 넘치고, 그렇게 대단한 교육열로 자식을 가르쳤다는데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니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무슨 일이 벌어지면 그야말로 벌떼처럼 어느 한 사람, 한 기관에 집중적으로 책임을 묻고 비난하는 일이 흔해졌다. 결과적으로는 사회 전체가 스트레스를 받아 그것이 내게도 되돌아오는데도 말이다. 한때 가톨릭 교회에서 '내 탓이오' 운동을 한 적이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남 칭찬하기'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으면 한다. 서열과 순위 매김에 익숙한 사회에서는 누구도 온종일 존중받을 수가 없고, 1등과 금메달에만 환호하고 이를 부추기는 시회에서는 웃음이 있을 수가 없다. 한국인의 근면과 역동성은 큰 장점이다. 이것이 '미친 짓'이 안 된다면…. 중남미인들의 여유 또한 큰 장점이다. 이것이 '게으른 짓'이 안 된다면…. '덜 미침'과 '덜 게으름'을 융합하여 글로벌 시대 삶의 방식으로 만들면 어떨까?
싱가포르와 카타르는 자타가 공인하는 부국인데, 영국 어느 기관의 행복지수 평가에서 각각 꼴찌를 기록한 적이 있다. 이 역시 지나친 경쟁과 규율 등으로 국민이 존중받지 못하고 웃을 일이 별로 안 생기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우중/대구가톨릭대 중남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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