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7월 구미시장으로서 '지방자치시대'의 서막을 열었던 김관용 경상북도지사. 꼭 20년이 흐른 2015년 7월, 그는 구미시청에서 대구 산격동 경북도청 청사로 자리만 옮겨 '단체장'을 계속하고 있다. 자치단체장 20년. 그는 대한민국 지방자치 20년의 산증인이다.
20년간의 단체장 생활 동안의 점수를 스스로 얼마나 주겠느냐고 했더니 김 도지사는 "80점은 넘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거 때의 득표율'현재의 여론조사 지지도 등을 객관적으로 따진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 20년 지방자치 역사에 대해서는 80점을 주기 어렵다고 했다. 대한민국 지방자치가 아직도 너무나 많은 모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 현장에 20년 있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정부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을 바탕으로 만든 틀이라는 데 근본적 문제점이 있다. 제도적 틀부터 잘못됐다는 것이다. 지방의 생각, 즉 밑으로부터의 염원을 담지 못했다. 하향식 지방자치다. 조직 하나 못 만들고, 재정 자주권도 없는데 이것이 무슨 지방자치인가? 국(局) 단위 부서 하나 만들려고 해도 중앙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무늬만 지방자치일 뿐이다.
-김 도지사는 국세청 출신의 조세 전문가다. 자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인데, 지방 재정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나?
▶우리나라 세금의 80%를 중앙정부가 거둬간다. 일하는 양을 따지면 지방이 60%를 하고, 중앙정부는 40%를 한다. 지방에 돈은 안 주고 일만 시킨다. 이러니 2할 자치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 지방엔 세금을 거둘 곳이 드물고, 중앙정부가 틀어쥐고 있는 세원(稅源)을 지방에 넘겨 줄 생각도 중앙정부엔 없다. 지방에 대해 자꾸만 '노력을 안 해서 돈이 부족하지 않으냐'고 하는데 우리는 경비를 줄이고 세금 거둘 곳을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이것은 변화를 주지 못한다. 중앙정부는 지방교부세 비율을 현재 19%대에서 21%까지 높이고, 부가가치세의 11%인 지방소비세율도 20%까지 올려줘야 한다. 지방이 부담하는 중앙정부 정책에 따른 복지비용도 이제는 지방과의 협의가 필요하다.
-시장'도지사 20년 점수를 80점 줬다. 지방자치 현장에서 무엇을 가장 열심히 했나?
▶현장을 열심히 다녔다. 지방자치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주민들의 행정 수요를 파악하고 그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제때, 제대로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장이 중요하다. 현장에 가야 도민들의 생활과 아픔도 알 수 있다. 2009년 5월 매일신문에 '도백의 눈물'이란 기사가 실렸다. 새마을여인상 대상 수상자인 권분희 씨 시상식에 갔다가 내가 축사도 못 하고 울어버린 얘기다. 알코올 중독과 중풍에 시달리던 남편 병수발에다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를 모시면서도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아온 권 씨 얘기를 듣고 먹먹해 눈물이 났다. '정말 이런 사람을 위해 도대체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눈물이 흘렀고 단체장인 내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힘든 이들이 사람 대접 받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경북도의 도정목표는 '사람중심 경북세상'이 됐다.
-20년 하다 보면 후회도 있지 않겠는가? '이거 내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런 것 없었나?
▶없다.(이 부분에서 그는 갑자기 강한 어조로 얘기했다) 후회하는 행정을 한 것이 단 한 번도 없다. 도청 이전을 두고 정말 시끄러웠다. 하지만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사적 과업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혼자서 다 못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산다. 나의 독단적 판단을 갖고 행정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여태까지 나는 후회 없는 결정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후회 없이 살아온 20년이라는데, 20년 전 첫 지자체장 출근 때, 구미시청 가던 길 기억이 나나?
▶내 고향의 자랑스러운 목민관이 반드시 되겠다는 꿈을 갖고 출근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왔다. 남들이 나 보고 6선이라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정말 6선인지 허허.(그는 이 부분에서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었다) 나는 한 번도 출판기념회를 해본 적이 없는데 만약에 책을 내면 '6'이란 숫자를 크게 써서 책 제목으로 붙여야겠다.(그는 또 한 번 웃었다) 책 얘기까지 나왔는데 나는 정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학교 교사로 시작, 오늘 이 자리까지 왔다. 돈이 없어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다. 우리 시대는 그랬다. 지방자치 20년의 공과도 내가 잘 알려야 하지만 대한민국 근대사를 압축한 과정이 나의 삶이어서 우리 근대사의 교훈도 잘 알리려 한다. 아프리카에서 새마을운동을 배우러 온 사람들이 내 얘기 듣기를 좋아한다. 희망을 주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 지방자치 현장을 20년간 지켜올 수 있었던 자산은 무엇인가?
▶1980년대 초 경제적 타격으로 휘청거리던 미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던 지도자가 레이건 대통령이다. 그는 부자도 아니었고 학벌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정치를 영화 만드는 것처럼 했다. 영화 소품'제작진과 배역을 짜듯 자원과 역할을 잘 배분했다. 인적'물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잘 돌려 최적의 효과를 만들어냈다. 이 사람을 보면서 '정치도, 행정도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내가 다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적절한 역할 배분을 통해 행정을 이끌어왔다.
-앞으로도 임기 3년이 남았다. 지방자치 산증인인 만큼 지방자치의 정착도 이뤄내야 하고 할 일이 많다. 무엇을 중점적으로 할 것인가?
▶지방자치 20년을 이어오는 동안 사실 삐걱거리는 소리도 많았다. 하지만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앞으로 잘 갈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해 향후 헌법을 개정한다면 '대한민국은 지방분권형 국가다'라는 것을 헌법에 선언적으로 담아야 한다. 지금의 '법률 자치'로는 국회가 나서 도(道)를 없애버려도 말 못 한다. 우리가 지방자치를 하자고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주민들을 위해서다. 미국 9'11 사태가 났을 때 현장 지휘관은 뉴욕소방서장이었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결정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지방자치를 외치는 이유다. 멀리 있는 물을 갖고는 가까이 있는 불을 끌 수 없다.
-지방자치의 주체인 지자체도 분발해야 하지 않나?
▶지방이 잘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기본이고 나는 문화를 통해 지방의 힘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북도는 경주엑스포, 유교 문화'가야 문화 사업 등을 열심히 해왔다. 다른 곳이 따라하지 못하고 경북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문화다. 문화 발신국으로서의 위상을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다.
최경철 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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