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복면가왕'과 메르스

요즘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가 MBC의 '일밤-복면가왕'이다. 프로그램 홈페이지에는 기획 의도를 "'인기라는 편견을 버리고 진정성 있는 노래로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든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그 의도는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가창력이 있지만 실력을 드러낼 자리가 없었던 가수,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실력을 저평가 당했던 몇몇 아이돌 그룹의 메인 보컬들, 그리고 노래를 좋아하지만 실력을 드러내지 못했던 배우와 코미디언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빛을 발하고 있다.

최근에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가면 속 인물을 맞힌 경험이 있다. 11, 12회 차에 출연한 '파송송 계란 탁'과 '어머님은 자외선이 싫다고 하셨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맞힌 것이다. '파송송 계란 탁'은 아이돌 그룹 빅스(VIXX)의 메인 보컬 '켄'(KEN)이었고, '어머님은…'은 걸그룹 '에이핑크'(Apink)의 메인 보컬 정은지였다. 둘 다 아이돌이라는 이름에 자신의 보컬 실력을 크게 평가받지 못했었다. 켄의 경우는 아이돌에 관심이 많은 시청자가 아닌 다음에야 '이렇게 노래 잘하는 애가 있었나' 싶었을 거다. 오죽하면 "정은지는 저 정도까지 노래 못한다"는 소리까지 했던 같은 소속사(큐브 엔터테인먼트) 선배이며 판정단으로 출연한 비스트(BEAST)의 멤버 손동운의 눈이 휘둥그레졌을 정도다.

전국이 메르스인지 메르치인지 하는 전염병에 사람들이 동지섣달 마른 나뭇잎처럼 오그라들었던 지난 6월, 집안에 제사가 있었다. 제사가 끝난 뒤 음복을 하는 자리에서 대구의 메르스 확진 환자였던 공무원 K씨 이야기가 나왔다. 자리에 있던 몇몇 어르신들은 공무원 K씨의 신상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나온 한 마디가 이것이었다. "그 양반 얼굴 보니 덕지덕지 심술이 붙었더구먼. 그러니까 공무원이 돼 가지고는 그런 식으로 처신하지!"

제사가 끝난 뒤, 어르신들이 말한 성토의 뒷맛이 뭔지 모르게 씁쓸했다. K씨에게 '메르스 확진 환자'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았다면 그 얼굴을 보고 그런 평을 할 수 있었을까. 그분의 실제 인생이 심술쟁이 인생은 아니었을 텐데 우리는 그가 '초반에 관계기관에 삼성서울병원 갔다 온 것을 신고하지 않은 공무원'이란 이유로 그에게 복면을 씌워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의 직무유기를 변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의 잘못 하나를 가지고 그의 수십 년 이어진 공직생활 전반과 그보다 더 길었을 그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은 상식에 맞는 행동인가 싶다.

메르스는 이제 대구경북에서는 어느 정도 진정 국면을 맞고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는 한동안 메르스가 남긴 여러 가지 교훈을 반추해 볼 것이다. 이때 우리는 편견 때문에 아무도 믿지 못했던, 편견 때문에 누군가의 인생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던 우리의 모습부터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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