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인에서 원수로…끔찍한 '이별 범죄', 대구경북 한 해 수백건

'데이트 폭력' 사회 문제화…'안전이별' 보호막 있어야

'당신의 연애는 안전합니까?'

사례1) 10일 대구 남부경찰서는 헤어지려고 하는 여자 친구를 협박하고 금품을 갈취한 혐의로 A(30) 씨를 구속했다. A씨는 여자 친구가 이별을 통보하자 "끝내자고 한마디만 더 하면 장사 못하게 다 때려 부수겠다"며 협박하는 등 한 달간 6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협박하고, 2회에 걸쳐 현금 550만원을 뜯어냈다.

사례2) 지난 1월 포항의 한 문구점 앞에서 40대 남성이 자신의 차량으로 서 있던 여성을 치었다. 이 남성은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며 4차례나 여성을 들이받아 부상을 크게 입혔다. 피해 여성은 알고 보니 이 남성의 전 여자 친구 B(31) 씨였다. B씨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은 남성은 B씨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해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사례3) 지난해 12월 30대 대구에 사는 한 남성이 7개월간 만났던 여자 친구를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남성은 전 여자 친구가 자신과 헤어지고 더는 만나주지 않자, 20여 차례나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연인과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성들의 '이별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데이트 폭력의 일종인 이별 범죄는 협박,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며 심지어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3년간(2011~2013) 대구경북에서 데이트 폭력으로 경찰에 붙잡힌 사람은 2천여 명에 달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구경북에서 데이트 폭력으로 검거된 사람은 2011년 754명, 2012년 774명, 2013년 685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전국적으로는 2만449명이 검거됐고, 연인으로부터 살해당한 사람도 143명이나 됐다. 이 중 상당수는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해 벌인 이별 범죄였다.

경찰에 집계되는 범죄 외에도 이별 과정에서는 언어 폭력이나 SNS 폭력 등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A씨의 사례처럼 상대방을 협박하거나 인터넷 게시판 또는 SNS 상에 상대방을 헐뜯는 글을 올리기도 한다. 이별 과정에서 가해지는 폭력 때문에 최근에는 '안전 이별'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상대방에게 협박이나 폭력 등을 당하지 않고 깔끔하게 헤어진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해외에서는 데이트 폭력 및 이별 범죄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도 한다. 영국은 2009년 전 남자 친구에게 살해당한 여성의 이름을 딴 클레어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안은 데이트 상대의 가정폭력 전과 등을 조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여성폭력방지법에 데이트 폭력을 포함해 가해자를 '의무 체포'한 뒤 피해자와 격리시키는 방법을 쓰도록 하고, 매년 2월을 '데이트 폭력 근절의 달'로 지정하는 등 데이트 폭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의 경우 성폭력특별법과 가정폭력방지법으로 각각 제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지만, 연인 사이에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은 처벌 조항이 별도로 없어 피해자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송경인 대구여성의전화 사무국장은 "데이트 폭력을 당하면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신고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연인이 폭력 성향이 있으면 이별 통보 등을 할 때 범죄 예방을 위해서 두 사람이 만나지 않기를 권하고 있다"고 했다.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