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를 갈면 거울이 되고 구리를 갈면 금이 될까?'
경상도(慶尙道)는 경주와 상주에서 땄다. 1314년 고려 때부터다. 험준한 산이 많아 교남(嶠南) 또는 영남(嶺南)이라고도 불렸다. 영남은 새도 쉬어 넘는다는 조령(鳥嶺)의 남쪽이란 뜻이다. 조선 8도(道) 중 가장 많은 고을을 가진 탓인지 인재도 많아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다'고 했다. 그러다 1896년부터 경상 남북으로 갈렸다.
경상도는 조선조 때 주로 비주류였다. 조정의 세(勢) 판도가 동서로 색목(色目)이 나뉠 즈음 동인(東人)이 됐다. 뒷날 기호(畿湖)의 노론과 소론의 수도권 세력 집권 시절에는 남인(南人)이 됐다. 대부분 시절 영남은 '정치적 섬'으로 만년 야당 신세였다. 집권 세력의 실정에다 매국(賣國)과 망국(亡國)을 맞아 영남은 의병과 독립투쟁으로 어느 곳보다 많은 피를 흘렸다. 정부 수립 이후 국가의 독립유공 포상자가 가장 많았던 이유다. 특히 경북은 압도적이고 그 정신을 기리는 국가 지정 독립운동시설도 따라올 곳이 없었다.
그러한 영남에 정부 수립 이후 어느 시절부터 정치적으로 특정 정파가 득세했다. 대구경북은 더 심했다. 1970~2012년까지 7회 대선과 8회 총선 등 각종 선거 분석 결과다. 관성의 법칙처럼 이런 특정 당 싹쓸이는 멈출 줄 몰랐다. 국민 모두가 공유해야 할 땅을 독식했다. 대구경북 '공유지'가 역동성을 잃기 시작한 이유다. 이런 폐습(弊習)은 비교적 지식, 소득, 생활 수준이 높은 대도시 대구도 같았다. 오히려 철옹성이 됐다. 수구보수라는 따가운 시선과 매도가 이어졌다. 특정 당 편식이 빚어낸 대구경북 '공유지의 비극'을 젊은이가 먼저 깨닫고 탈출에 나섰다. 활력 없고 일자리조차 없으니 유목민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지독한 편애가 되레 부메랑이 됐다. 그 맹목적 지지 대가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촌철살인의 한마디다. "수도권 의원은 '금메달'이요, 경상도 의원은 '동메달'이다." 그는 이를 "항상 생각해왔다"는 심경도 고백했다. 불가(佛家)에 '기와를 갈아도 거울을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리 동메달을 갈고 많이 모아도 금메달이 될 수 없다. 뜻은 말로 나타나고 말은 글로 표현된다. 지독한 편애에 대한 자신의 속 뜻 즉 속내를 잘 드러낸 말이다. 이중환 이후 경상도를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말로 기록됨 직하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가 길을 제시했다.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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