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지역주의 타파만이 최고의 가치인가?

노무현은 지역주의를 극복하고자 16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한나라당 텃밭이자 자신의 고향인 부산에서 출마했다가 뜻을 펴지 못하고 낙선했다. 비록 선거에서 패했으나 지역주의 타파란 명분을 걸고 사지로 뛰어든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노무현은 지고도 이긴 게임을 한 것이다. 그 여세를 몰아 16대 대선에서 청와대를 점령했다. 정치에서 명분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실리도 명분 못지않게 중요하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은 현직 대통령 '조지 H. W. 부시'를 물리치고 미국 4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고 의기양양하던 부시에게 클린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외쳤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알칸소 시골뜨기 클린턴이 재선에 도전하던 노련한 부시를 거꾸러뜨린 것이었다.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단 한 사람, 클린턴 그 자신밖에 없었다고 한다. 가히 기적이라 할 만했다. 실리의 중요성과 그 파괴력을 확실히 입증한 셈이다.

명분과 실리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균형적인 조합이란 것도, 비교되는 실리에 따라 변화하고, 시대와 환경 그리고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것이다. 개인이나 일반대중이 중요시하는 가치는 시대와 지역, 상황이라는 변수에 따라 바뀌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2002년 대한민국에서 '지역주의 타파'라는 명분가치가 어필했고 1992년 미국에서는 '경제'라는 실리가치가 득세했다. 그렇다면 2002년 대한민국에서 지역주의 타파라는 명분가치가 통했다고, 똑같은 명분가치가 2015년 대구에서 과연 먹혀들 수 있을까? 시대와 지역이 바뀐 데다 상황까지 변했기 때문에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 그러나 변화된 것만은 확실하다. 대구에 청년 일자리가 절대 부족하고 서민 경제가 너무 어렵다. 2015년 현재, 대구는 지역주의 타파라는 명분보다 '일자리 창출'과 '경제 살리기'라는 실리가 더 절박하다. 그리고 신라의 삼국통일과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끈 위대한 인물들을 배출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통일을 이끌 위대한 리더십이란 대의명분이 시대적 요청일 수 있다. 양수겸장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지만.

내년 4월, 우리는 우리 지역을 대표할 선량을 다시 뽑아야 한다. 이때, 우리는 우리 지역의 시대적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지역주의 타파라는 단선적 사고에 갇혀 있는 사람보다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해하는 인물이 더 절실하다.

대구가 특정 정당 일색이어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단지 그것 때문에 경제가 어려운 것도 아니며, 단지 그것 때문에 대구 정치인이 동메달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대구 정치인이 동메달이라는 말은 대구시민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다. 모두 금메달이다. 알고 보면, 지역구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국정에 더 전념하는 내실 있는 분이 더 많다. 광주도 특정 정당 일색이다. 그 때문에 광주가 발전하지 못했다는 근거는 없다. 반면, 부산'경남에는 각각 한 명의 야당 중진 국회의원이 있다. 그것 때문에 부산'경남이 대구나 광주보다 더 발전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대구에 지역구 야당 국회의원이 한 명 나와야 대구가 발전한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지역주의 타파만이 최고의 가치인 것은 결코 아니다. 시대 가치를 대변하는 사람이 선택될 뿐이고 그 결과가 일당일색이라면 그것은 단지 선택의 결과일 뿐이며 국민이 일당일색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어느 한 정당이 독식했다고 이를 폄하하고 신성한 선택을 조롱해서는 안 된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것은 대구시민의 자유로운 선택의 산물이고 그 누구도 이를 비난할 수도 없으며, 또 비난해서도 안 된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고, 한 표 한 표 신성하지 않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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