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노크를 하고 병실문을 열었다. 병상에 누워 있던 어르신들이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불청객의 방문에 놀란 듯 눈을 끔벅이며 문 앞에 선 일행을 쳐다봤다. 유독 한 명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입술이 사라지고 눈썹이 보이지 않는 얼굴. "아유, 죄송합니다. 쉬세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쭈뼛거리다가 문을 닫았다.
이곳은 한센병 회복자들이 머무는 가톨릭피부과의원 까리따스병동이다. 이곳에 있는 한센병 환자는 30여 명. 한센병에서 회복된 이들이고, 음성이다. 한센병을 앓았던 흔적이 몸에 남아있을 뿐 전염의 위험은 없다.
한센병은 나균에 의해 감염되는 만성질환이다. 나균이 신경계에 침범해 촉감이나 통각, 온도 감각이 사라진다. 손가락과 발가락의 감각이 사라지면서 지속적인 외상을 입고, 감염으로 인해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여기 계신 분들은 다른 병원에 가길 꺼려요. 손이나 발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싫어하죠. 다른 환자들의 시선도 여전히 불편하고요."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한센병 회복자들은 보통 3~4개월 정도 입원한다. 한센병 후유증으로 손가락, 발가락 마디마다 상처를 입어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경은 손상되면 회복되지 않고, 염증이 반복되기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재활 치료와 궤양 재활 수술, 다른 병원에서 치료하기 어려운 다양한 질환 등도 치료한다.
이곳에 머무는 환자 수는 매년 30~40%씩 줄고 있다. 한센병은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연간 1만 명당 1건 미만으로 발생하는 드문 질환이다. 발병국도 전 세계에 24개국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도 1991년에 종식 선언을 했다.
간혹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센병 환자로 판정받는 게 전부다. 감염된 줄 모르고 지내다가 한국에서 발병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로운 환자가 없고, 지금 계신 분들도 연세가 높아요. 언젠가는 입원 환자가 모두 사라지겠죠."
병동을 나서며 부끄러운 감정이 몰려왔다. 그곳에 있는 환자들은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 전염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 머릿속으로는 분명히 알고 있지만, 몸은 선뜻 반응하지 않은데 대한 자책이었다.
한센병 치료를 위해 가톨릭피부과의원이 설립된 지도 벌써 50년을 헤아린다. 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신축 건물은 지금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66년 병원 건물을 지을 당시만 해도 이곳은 인가조차 찾기 힘든 허허벌판이었다. 그런데도 병원 건립은 주민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칠곡 지역 발전에 지장이 된다는 애향심이 표면상의 이유였지만, 한센병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이 근본적인 이유였다. 설립자들은 읍내의 유지들을 불러 막걸리 파티를 열며 어렵게 설득하고, 개원 초기 매주 한 차례씩 무료 진료도 했다. 의료 기반이 턱없이 부족했던 그때, 주민들은 병원 앞마당에 장사진을 치고 진료를 받으며 약을 받아갔다. 병원 측은 인근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하고 전기시설을 넣어주는 등 지역 사회 개발에도 참여하며 인식을 바꿨다.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였던 엠마 프라이징거 여사는 코와 귀가 사라지고 고름이 낀 환자들의 환부를 어루만지며 환자들을 돌봤다. 그는 한센병자들에게 그야말로 '하얀 옷을 입은 천사'였다. 그래서 환자들은 그를 '엠마' 대신 '엄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많은 '천사'들의 노력으로 한센병은 사라진 질병이 됐다. 병은 사라졌지만 편견과 두려움은 여전히 끈덕지게 살아 있다. 지독한 편견의 굴레는 가톨릭피부과의원이 문을 연 50년 전이나 현재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한센병 회복자들은 손발을 드러내길 꺼리고, 남들과 조금 다른 후유증을 앓는 그들을 바라보는 꺼림칙한 시선 역시 여전하다. 교육받은 이성은 이유 없는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는 힘이다. 결국 사회를 바꾸는 건 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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