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일 전 대구시장은 현직 시절 가끔 고통스러운 '대구 디스카운트(Discount)'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이는 대구를 부정적으로 보고 대구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그릇된 외부의 시각을 빗댄 말이다. '대구 프리미엄(Premium)'의 상대되는 말이다. 물론 그동안 대구에서 크고 작은 사고나 좋지 않은 사건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구만의 일은 아니다. 그러함에도 이런 현상이 빚어진 데는 그동안 전국 여론시장을 지배하는 서울 언론이 대구경북에 관해 주로 부정적인 소식이나 뉴스를 선택해 전국으로 보도 생산해 퍼뜨린 영향이 없지 않다.
대구의 좋지 않은 이야기에 대해서는 제목 뽑기도 좋다. 예를 들면 '또 대구에서 사고가…' '또 대구에서 사건이…' 이런 식이다. 이런 반복이 거듭되면서 대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굳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대구시민은 이에 별로 항의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특정 분야에서 대구가 부정적인 사례의 '봉'이 되기도 하고 희생타로 곧잘 등장하곤 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대구를 '살맛 나는 곳'으로 바꿔가려는 '소리없는 움직임'은 오늘도 멈추지 않고 있다.
올 들어서만도 그런 사례가 이어졌다. 1월에는 대구 달서구 길에 뿌려진 현금 800만원 회수 기적이 일어났다. 6월 메르스 때는 건물주가 힘든 세입자의 월세 50%를 깎아주기도 했다. 7월에는 만 65세 경로우대 승객의 대구지하철 유료탑승 희망자가 등장했다. 이에 대구시는 이를 별도로 관리해 미래세대인 청년 일자리 등의 기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아울러 본사에서 13년 동안 계속해온 이웃사랑 성금이 7월 들어 70억원을 돌파하는 새 기록을 세웠다. 8월에는 폭염 속 대구 도심 화재 현장에서 소방차 길을 터주고 사라진 '번개 자원봉사 시민' 활동이 나타났다. 지역 주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지는 이 같은 사례는 수없이 많고 다양하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공동체를 이뤄 '살맛 나는 대구'로 바꿔가는 사례도 있다. 대구 동구의 이른바 '안심지역마을공동체' 이야기다. 인구 4만 명의 안심은 K2비행장 소음과 연료단지 등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는 곳이었다. 그러나 2003년부터 다양한 분야의 공동체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장애'비장애 통합어린이집부터 시작한 공동체는 현재 15개에 이른다. 육아 어린이집, 어린이도서관, 사회적 협동조합, 장애우 일터인 마을카페, 로컬푸드단체 등 사업 분야는 다양하다. 이들 15개 공동체가 '따로' 혹은 '함께' 안심을 새로운 삶터로 바꿔가는데 뜻이 통하면서 자연스럽게 모두 안심지역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셈이다.
각 공동체는 회원이 수십 또는 수백 명, 1천 명이 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15개 공동체의 연합체나 협의체는 없다. 이들 각 공동체는 따로 운영하지만 함께 협조하고 지혜도 나눈다. 즉 서로의 독자성을 살려 운영을 하되, 교류와 협력은 아끼지 않으면서 살맛 나는 안심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함께하는 연중 큰 행사만도 10개가 넘는다. 거의 매월 행사를 치르는 꼴이다.
공동체를 지원하는 주민을 위한 마을음악회는 32회나 열었다. 옛 유교 사회의 이상(理想)인 '대동사회'(大同社會)는 아닐지라도 분명 살맛 나는 안심을 향해 가고 있다. 여러 곳에서 공동체를 살피러 오는 발길이 이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범일 전 시장의 바람은 '대구 디스카운트'가 '대구 프리미엄'으로 되는 것이었다. 이는 김 전 시장만의 생각에 그치지 않는다. 250만 대구시민 모두가 바라는 꿈이다. 그동안 대구는 힘든 시련을 잘 견디고 이겼다. 대구를 살맛 나는 도시로 바꾸는 것은 영웅의 몫이 아니다. 걸출한 지도자 몫도 아니다. 시민의 몫일 뿐이다. 지금은 바로 그런 시민 시대다. 대구 공동체를 향한 시민 한 사람의 역할만으로도 대구 프리미엄은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온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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