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침에 길을 나서면서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악행의 역사를 증언하는 장소에서 수많은 영령을 대하는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사람이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
1970년 12월 7일, 바르샤바는 궂은 날씨였다. 빌리 브란트는 현지의 반대 여론에도 폴란드를 방문했다. 2차대전 후 폴란드를 찾은 첫 독일 현직 총리였다. 그는 1943년 나치에 의해 학살된 폴란드 유대인을 기리는 '게토 봉기 희생자 추모비' 앞에 섰다. 순간 그는 비에 젖은 계단 위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후 눈물을 흘렸다.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무릎 꿇은 브란트'의 모습이 전 세계에 타전됐다.
당시 독일에 대한 유럽인들의 반감은 여전했다. 하지만 브란트의 진심 어린 참회를 지켜본 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나치에 맞섰던 브란트에게 전쟁 범죄에 대한 도의적 책임도 묻기 어려웠지만 그는 독일을 대신해 무릎을 꿇었다. 당시 슈피겔지는 '무릎 꿇을 필요가 없었던 그가 그런 용기조차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무릎을 꿇었다'고 보도했다. 각국 언론도 '무릎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고 평가했다.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가 12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아 추모비에 헌화한 후 신발을 벗고 큰절을 했다. 그는 일제의 악행에 목숨을 잃은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영령을 위로하고 식민 지배에 대해 사죄했다. 처음부터 무릎을 꿇을 계획은 아니었다지만 전'현직 일본 총리 중 진심 어린 사죄를 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하토야마의 사죄는 우리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하지만 '아베의 일본'은 여전히 온갖 구실을 대고 말장난으로 역사를 비웃고 있다. 가해자가 짊어져야 할 짐을 거꾸로 피해자 측에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벌써 70년이 넘었다.
바르샤바 유대인 역사박물관 부근의 빌리 브란트 광장에는 브란트 총리의 '참회의 사죄'를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무릎 꿇은 브란트 총리의 모습을 동판에 새겼다. '바르샤바 참회' 30주년을 맞아 2000년 12월 6일 제막한 것이다. 이는 가해자를 대표해 사죄한 독일 총리를 폴란드가 길이 기억하겠다는 의미다. 하토야마 전 총리의 이날 사죄가 일제와 아베의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깊은 증오를 누그러뜨리는 첫걸음이라면 성급한 기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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