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 단락 인문학] 2015년 여름, 당신은 여전히 외롭습니까?

현대인들은 외롭다. 거리엔 사람들이 가득하고 SNS에는 수백 명의 친구들이 있으며 늘 소통을 강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들은 외롭다. 어쩌면 그렇게 소통을 강조한다는 것 자체가 현대인들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지를 잘 보여주는 모순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진기행'으로 유명한 김승옥 작가의 '서울, 1964년 겨울'은 욕망의 집결지인 서울이라는 공간 속에서 인간 개개인이 얼마나 소외되어 가고 이기적으로 변해가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서울, 1964년 겨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이름이 없다. 그저 '나'와 '안'과 '사내'가 나올 뿐이다. 그들은 서로의 삶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사회적인 유대감이나 공동체 의식은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죽은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고 괴로워하는 '사내'의 마음을 전혀 공감해주지 못한다. 함께 다니던 그들은 심지어 여관에 투숙할 때도 그런 '사내'를 방치한 채 각기 따로 방을 잡는다. 결국 '나'와 '안'은 '사내'가 극단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음에도 그의 죽음을 방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통과 공감이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된 2015년의 모습은 어떤가. 우리는 1964년의 겨울과는 다른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일까.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지하철이지만 의외로 지하철이라는 공간을 굉장히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다. 좌석이 서로 마주 보도록 배치되어 있는 지하철의 특성상 앞자리에 앉은 사람과 마주 앉아 이동해야 하는데 시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굉장히 어렵고 곤란한 문제가 된다. 아무 말 없이 빤히 앞사람을 쳐다보고 있자니 민망하고, 그렇다고 밝게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기엔 왠지 상대방이 부담스러워 할 것 같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상대방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에게 비칠 자신의 모습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점점 더 외롭고 고독한 군중이 되어간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아파트라는 공간은 어떤가. 흔히 우리가 달동네라고 불렀던, 성냥갑 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서 있는 공간은 비록 가난했지만 이웃 사이의 정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마당 깊은 집'이나 '몽실 언니'에 나오는 이웃들은 비록 볼품없고 가난한 사람들이었지만 한없이 정겹고 푸근한 인물들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현대의 성냥갑인 아파트는 전혀 다르다. 훨씬 더 부유하고 풍요로워졌지만 그만큼 삭막한 회색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아파트에 이사 오게 된 한 어린아이가 아파트 게시판에 인사의 글을 남김으로써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게 되고 밝아졌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현대인들이 고독하고 외로우며 소통에 목말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때, 일요일마다 전 국민의 3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시청하던 한 프로그램에서 늘 외쳤던 말이 있다. '나만 아니면 돼!' 예능은 어디까지나 예능이고 웃음을 위한 장치일 뿐이지만 돌아보면 씁쓸한 말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은 고통을 받더라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현대인의 고독과 단절을 더욱 심화시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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