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하고 메마른 세상 하루하루 급급
예순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아쉬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
물 흐르듯 순리대로 소통하며 살고파
얼마 전, 가족들과 고향 경주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은행장 시절에는 바쁜 일정 속에 휴가다운 휴가를 못 가보았기 때문에, 이번 휴가는 정말 오랜만에 푹 쉴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점심도 먹고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 낚싯대를 챙겨서 홀로 숙소 앞 강가로 나갔다. 어렸을 때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동네 개천으로 고기를 잡으러 다니고, 젊었을 때에도 휴일이면 강이며 바다며 이곳저곳을 다니며 낚시를 즐겼는데, 어느 순간부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낚시를 다닌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이번 휴가 때는 꼭 낚시를 한 번 해야겠다는 생각에 낚싯대를 챙겼었다.
흐르는 강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샛바람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강물을 바라봤다. 고요한 풍경이 주는 여유로움과 평온함이 참 좋았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우리네 인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흔히 '법(法)대로 살아라' '물 흐르듯이 사는 것이 최선이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법(法) 자는 한자로 물수변에 갈거(去) 자를 쓴다. 즉 물이 가는 대로, 물 흐르듯이 순리대로 살라는 말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예부터 선인들은 물을 빗대어 후손들에게 삶을 살아가는 많은 지혜를 선물했다. 그중, 내가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노자(老子)의 가르침이다. 중국의 사상가 노자는 인간수양의 근본을 물이 가진 일곱 가지의 덕목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겸손(謙遜)의 덕/ 막히면 돌아갈 줄 아는 지혜(智慧)의 덕/ 구정물도 받아주는 포용(包容)의 덕/ 어떤 그릇에나 담기는 융통(融通)의 덕/ 바위도 뚫는 끈기와 인내(忍耐)의 덕/ 장엄한 폭포처럼 투신하는 용기(勇氣)의 덕/ 유유히 흘러 바다를 이루는 대의(大義)의 덕' 이것이 바로 노자가 말하는 수유칠덕(水有七德)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높은 지위에 오르고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성공한 삶, 행복한 삶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각박하고 메마른 세상 속에서 물이 주는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살아가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물처럼 지혜롭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예순이 훌쩍 넘은 지금 지난날의 삶을 돌아보면 그렇게 살지 못한 시간들도 많은 것 같아 못내 아쉬운 것들이 많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많이 가지고, 많이 누리고, 많이 즐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이 나누고, 많이 베풀고, 함께 누리는 데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혹시나 나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급급해 주위 사람들에게 그러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뒤돌아보게 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던가. 이제 더 늦지 않게 자연을 조화롭고 풍요롭게 해주며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는 물처럼 자신을 던져 타인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무위와 무상, 무욕의 강건한 삶을 살아야겠다. 때론 거침없이, 때론 완급을 조절하며 어디에 있든 주위에 자신을 맞추면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며 살아야겠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깊고 그윽하게 낮은 곳으로 임하는 어진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그렇게 강물처럼 흘러 흘러가다 부딪히는 모든 것들과 소통하며 유유히 흘러가다 보면, 씻기고 비우고 맑아지고 깨우치면서 인생이라는 너른 바다에 닿지 않을까?
주변 사위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대했던 짜릿한 손맛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오랜만의 낚시를 서둘러 접어야 했지만, 극심한 가뭄 속에 내린 반가운 비였기에 아쉽지는 않았다. 다만, 마르고 갈라진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준 빗방울처럼, 아낌없이 다 주는 물이 주는 가르침이 우리네 메마른 마음에 잠시라도 스며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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