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진실 추구를 기본 사명으로 삼는다. 그것은 아무리 지난할지라도 추구되어야 하는 숭고한 가치이다. 결코 포기되어서는 안 되는 언론 본질인 것이다. 우리 언론사의 굵직굵직한 필화사건이 진실을 향한 염원으로 충만한 문화적 자본으로 불리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필화! 갖은 형용과 동원으로 은폐와 엄폐의 음모를 작동시키는 권력의 빈틈을 비집어 진실의 길로 나아가려는 저항적, 비판적 언론에 대한 테러이다. 독립되고 자유로운 언론만이 나라를 진정 올곧게 세울 수 있다는 숭고한 신념이 없다면 필화는 없을 것이다. '권력의, 권력에 의한, 권력을 위한' 언론 통제를 자양분으로 삼기에, 그래서 필화는 어쩌면 권력을 생모(生母)로 삼을지도 모를 일이다. 1955년 9월 13일 매일신문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이 땅에 민주주의가 채 뿌리를 내리기도 전 몽향 최석채 선생의 이 사설이 더욱 비장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언론 자유와 독립이라는 말 잔치가 창궐하는, 그러나 언론 진실의 빈곤에 허덕이는 우리 현실이 부끄러운 이유이다.
사설은 이승만 대통령의 측근, UN대표부 임병직의 대구 방문 환영 행사에 학생을 동원하고, 그것도 모자라 소련 영향권하에 있던 '체코와 폴란드 물러가라'라는 정치 구호마저도 목 놓아 외치도록 한 지방 관료에 대한 규탄이었다. 국민의 공복인 관료에 동원되어 버린 학생 인권과 국민 주권보다는 그들의 권력 공생과 기생을 우선하던 부조리에 항거한, 그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향한 절규였다.
얼치기 권력자의 지방 행차에 학생 동원이 필수적 관례였던, 그래서 별 이상할 것도 없을 법한 일에도 선생은 날카롭게 비판했다. 비판의 본질은 권력 오남용에 대한 비장한 경고였고, 비판을 통해 추구하고자 한 민주적 가치는 정당성과 합법성이었을 것이다.
정당하고 합법적인 요구조차 용인되지 않았던 시절, 학생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입장과 고충을 통찰한 사설은 언론이 '낮은 곳으로' 임할 것을 엄명한다. 권력을 좇아 영혼팔이에 여념 없는 '가진 자'의 '입'과 '혀'를 자처하지 말 것을 주문한 대신, 미래와 희망조차도 곤란에 처한 '힘없는 자'의 '손'과 '발'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사설은 구(求)한다. 진실 추구에 목전의 현실을 핑계 대지 말 것이며, 진실을 규명함에 권력과의 비대칭적 구조 따위도 문제 삼지 말 것이며, 궁극에는 진실의 무릎이 꺾이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4부 권력, 비판과 견제, 민주주의의 보루. 온갖 미사여구가 결코 낯부끄럽지 않은 그런 언론, 그런 저널리즘 실천 규범이 이 땅에 공고히 뿌리내리게 할 것을 당부한다. 사실만 난무하는 진실이 간과된 언론, 직업적 영혼마저도 망각한 언론인, 언론의 본질과 목적이 형식과 도구로 전유되어 버린 참담한 역설의 언론 문화와 그 적폐를 말끔히 지울 것을 주문한다.
필화는 언론 테러다. 이미 생경한 단어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다. 진실도 없음이다. 온갖 권력이 가세한 부정과 비리와 의혹의 악취가 국민의 코를 쑤셔대지만, 무엇 하나 속 시원히 드러나는 일은 결코 없다. 아뿔싸. 진실의 횃불을 밝히는 언론은커녕 진실의 커튼을 자처하는 앞잡이 언론이 오히려 요란하게 장을 치는 형국이다. 미디어 풍요 시대의 역설이다. 고개를 돌려 몽향 선생의 사설에 깃든 언론정신을 다시금 음미해 볼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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