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담실에서-은퇴] 가사노동 힘겨워 30년간 일해 온 직장 그만두려 합니다

◆고민= 중소기업 부장으로 재직 중인 50대 초반의 여성입니다. 직장생활 30년, 결혼생활도 어느덧 20년을 넘었네요. 직장생활과 두 아이 출산, 육아를 병행하면서 세월이 어찌 흘렀는지 정신없이 살아온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30여 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된 육아휴직, 출산휴가도 없이 하루도 온전히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생활 자체가 일이고, 삶 자체가 일이었던 것 같아요. 늘 피곤하고 힘들어 혼자서 '1년만 더 일할 거야'라는 다짐을 한 게 벌써 30년이 되었네요.

아이들 교육비와 부모님 용돈이며 쉽게 일을 놓기 힘든 경제적인 이유들이 있었지만, 일에 대한 애착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고, 이제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쉬고 싶은 마음입니다. 자녀 둘은 현재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엄마 손이 많이 가는 시기는 지났지만, 그동안 거의 혼자서 집안일과 육아를 하다 보니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집안일을 전혀 도와주지 않는 남편을 생각하면 얄밉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30년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려 하니 남편이 반대합니다. 결혼과 함께 맞벌이 부부로 살아왔지만, 남편은 집안일에 거의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집안일이 걱정이고 몇 년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동안 일에 치여 눈물 흘린 날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돌이켜보면 서러워서 눈물이 납니다. 그런데 이제 쉬고 싶다고 하니, 남편은 위로는커녕 집안일이 할 게 무엇이 있느냐는 기막힌 말만 합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밥은 밥솥이 하고, 가사도우미도 있고, 아직은 돈도 더 벌어야 한다고 닦달합니다. 그래서 속이 상합니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시작한 직장생활을 정리하는 것도 마음이 복잡한데, 남편까지 반대하니 고민입니다.

◆해법= 중소기업에서 출산과 육아를 병행하며 30년 동안 경력단절 없이 기혼여성으로 근속하셨다니 우선 박수를 보냅니다. 내담자의 나이를 고려할 때, 그 당시만 하더라도 기혼여성으로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사회적 조건들이 고려되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이 갑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출산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기혼여성이 30년 동안 근속할 기회를 준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내담자의 업무능력을 인정한 결과이겠지요.

직장생활이 힘들기도 했겠지만, 집안일과 직장 일의 병행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에 삶이 더 힘들게 느껴졌으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집안일과 직장 일에 치여 사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말투나 태도가 고단한 아내의 생활에 도움이나 위안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지치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말이라도 '당신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 힘들면 이제 그만 쉬어도 돼요' 이렇게 말해주면 참 좋을 텐데…. 그렇게 말하더라도 은퇴를 결심하기까지는 당사자의 고민이 깊었을 텐데요. 그런 마음에 30년 동안 몸담아 온 직장을 은퇴할지 선택의 귀로에 있군요.

1980년대 이후 여성이 경제활동에 대거 참여하면서 맞벌이 가족이 대세이지만 우리 사회의 여성은 여전히 가사노동과 육아를 전담하는 이중부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통계청(2012년 자료)에 따르면 맞벌이 여성의 일일 가사 노동시간이 맞벌이 남성의 6.5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여성들의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이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가사노동이나 육아를 여성의 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부부의 공동 책임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도와주거나 일을 분담하는 것이 아니라 맞벌이 부부가 가정경제에 대해서 책임을 분담하듯이 가사노동 또한 책임을 분담하는 사회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가사노동에 대해 도와준다거나, 단순히 분담한다는 표현에는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닌 것을 선의로 해준다는 의식이 전제돼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상황이나 여건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이런 인식의 전환이 없다면 내담자의 고민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이미 이 땅의 일하는 여성들 모두의 고민, 그 이상의 고통이라 여겨집니다.

은퇴를 선택하기 전에 먼저 30년을 지켜온 자신의 일을 그만두려는 진정한 이유를 찾으셔야 합니다. 30년 동안 한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해왔다면 내담자는 그 분야의 베테랑 중의 베테랑일 것입니다. 직장생활에 대한 고단함이 아니라 집안일과의 병행으로 오는 어려움과 피로함이 은퇴를 고민하게 된 원인이라면, 은퇴를 감행하기 이전에 집안일을 덜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좀 더 늘리는 것도 방법이 되겠지요.

두 번째로 남편과 함께 그동안의 힘든 시간에 대해 진심으로 공유하고, 내담자가 경제활동을 지속하기를 원한다면 가사노동에 대한 책임도 나눌 것을 제안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50대 이상의 한국 남성들은 대부분 여성(아내 또는 어머니)들의 가사노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고, 가족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힘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내담자의 남편이 특별히 나쁘거나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가진 가부장적인 시스템의 문제라고 보입니다. 50대 이상의 남자라면 가부장적인 생각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집안일을 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보는 것 또한 가부장적인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성은 경제활동을 통해 소득이 있을 때,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감과 가족 내 의사결정에서 힘을 느낀다고 합니다. 여성들의 90% 이상은 직업을 가지길 원하며, 자신의 일을 즐겁게 수행할수록 자신감과 삶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한편으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삶의 활력이 되기도 하지요. 아직 50대 초반이면 한창 일할 시기이고, 오히려 집중적인 육아 시기를 지나 일에 더욱 매진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현명한 선택으로 행복한 시간을 엮어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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