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70년전 여관비 이제야 갚습니다" 어느 老학자 '참회의 고백'

"여관 수소문 했지만 없어져" 편지와 50만원 등기로 보내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가 청송군 진보면사무소로 보낸 편지. 청송군 제공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가 청송군 진보면사무소로 보낸 편지. 청송군 제공

지난 8월 25일 청송군 진보면사무소로 한 통의 등기우편(사진)이 날아들었다. 70년 전 고백을 담은 노인의 편지였다. 봉투 안에는 손 글씨로 쓴 편지와 현금 50만원이 동봉돼 있었다.

"서울 양정중학교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중 13세 되던 해인 1945년 8월, 조국 해방을 맞아 고향인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안동에서 화물차를 타고 진보에 왔을 때 차가 더는 운행할 수 없게 됐고, 할 수 없이 인근 여관에 묵게 됐습니다. 하지만 여관비가 없어서 주인 모르게 (새벽에) 도망쳐 나와 고향으로 갔습니다."

여관비를 떼먹고 달아난 13세 소년은 7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잘못을 고백하고 참회의 편지와 함께 50만원을 보내온 것이다.

진보면사무소 관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는 "수십 년 전에 진보를 다시 찾아 여관을 수소문했지만 그 여관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제과점이 들어서 있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편지글에서 '서울 유명호텔 일일 숙박료가 50만원이라 50만원을 동봉했다. 보낸 돈을 진보면 숙박업소를 위해 써달라'고 했다.

권영상 진보면장은 이 돈으로 지역 6개 숙박업소에 양심거울을 선물했다. 거울을 맞추고 남은 4만원으로는 비누를 사 숙박업소에 똑같이 나눠줬다.

권 면장은 "70년 만의 반성과 정성 어린 편지, 기탁금은 우리 모두에게 큰 울림을 줬다"며 "양심거울을 선물한 이유는 거울이 여관에 꼭 필요해서였고 양심이란 말을 붙여 마음을 다해 정직하게 살아가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기자가 취재를 한 결과, 편지를 쓴 사람은 조동걸(83) 국민대 명예교수로 확인됐다. 조 교수는 평생 독립운동사를 연구해온 대표적인 역사학자다.

조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너무 늦어서 미안한 마음"이라고 짧게 말했다.

조 교수는 2009년에도 비슷한 일을 했다. 영양교육지원청 한 공무원에게 60년 만에 빚을 갚는다며 200만원을 보낸 것이다.

1949년 조 교수의 아버지가 과수원을 관리하던 사람에게 인건비로 송아지 1마리를 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그것을 못 지키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 훗날 그는 수소문 끝에 관리인의 아들이 공무원이 됐다는 것을 알게 됐고 마침내 아들을 찾아내 아버지의 약속을 아들인 자신이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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