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담실에서-청소년] 평소 분위기 좋은 학급 그런 우리 반에 집단 괴롭힘이라니…

◆고민= 며칠 전 제가 담임을 맡고 있는 학급의 한 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학생의 경직 되고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져 저 또한 긴장된 상태에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학생은 지금 현재 반 친구 몇 명으로부터 학기 초부터 괴롭힘과 신체적 위협, 협박, 심부름, 돈 강제로 털어가기 등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사실을 두서없이 얘기했습니다.

학생은 자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저에게 자퇴 절차를 물었습니다. 평소에 저희 반 분위기가 밝고, 예의가 바르며, 수업 시간에도 열의를 가지고 있다는 다른 선생님들의 평이 있었기 때문에 이 한 통의 전화내용은 저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용기 있게 자신의 상황을 얘기해 준 학생과 가해학생 모두가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므로,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잘 극복해 나갈 지가 과제라 이렇게 상담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처벌 위주로 교육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해법= 학교에 들어서면, 학교 전담 경찰관을 소개하는 문구들이 눈에 띕니다. 복도를 지나칠 때면 선생님이나 학생들이 가해학생은 누구이고, 피해학생은 누구인지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을 볼 때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학교가 아닌 다른 장소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 적도 있었고, 법에서 사용될 법한 용어들이 공공연히 학생들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을 들으면서 서늘한 바람이 가슴을 스치는 느낌을 경험하곤 합니다. 아마도 사례를 의뢰한 선생님의 심정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선생님으로서 피해학생-가해학생으로 구분하기에 앞서 모두가 나의 제자들이라는 애정의 마음이 크게 느껴지는 사례였습니다.

'인성교육진흥법'(인성법)이 올해 7월 21일부터 시행되며, 현재 시행규칙 제정 작업 중입니다. 또한 성인을 대상으로 인성교육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인성함양진흥재단법'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습니다.

최근 들어 일어난 세월호 참사, 학교폭력, 자살률의 증가, 묻지마 살인사건, 군대 내 총기사고 및 폭력사태 등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비도덕적, 비윤리적, 범법 행동들의 증가로 인성교육의 필요성이 고취된 결과라 생각됩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에게 이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례학생들을 보면서 '학교폭력 상황이 개인의 비도덕성이나 사악함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문화적 환경과 제도가 비도덕적, 비인간적, 비사회적 행동들을 양산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산성 경쟁이 치열한 사회, 물질숭배 사상의 팽배로 인한 생명경시 풍조,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결과중시 사회, 가족의 와해, 대중매체와 발달된 전자기기의 영향, 우리 사회의 가치관 전도 등. 이런 속에서 학교폭력도 우리 아이들이 사회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방도로 나타난 병리적 형태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은 사례의 피해학생과 가해학생들을 모두 만나보면서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누가 피해학생인지 가해학생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인상에 그 또래들이 좋아하는 것과 고민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담과정에서 피해-가해학생 모두가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감이 낮은 경향이 많고, 학교생활에서 겪는 스트레스가 매우 높게 나타나서 선생님과 논의하여 불만족이나 높은 스트레스 경험을 줄이기 위해 학생들의 일상생활을 전문가들이 연극으로 꾸며 보여주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연극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통쾌히 말할 수 있어서 좋았고, 상대와 자신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이 사례 해결을 위해 많은 선생님과 함께 고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학생들의 인성 함양을 위해 도덕성과 사회성, 감성을 키울 수 있는 부분에 초점을 두고 상담을 진행하고자 애썼고, 그 과정에서 많은 뜻있는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연극활동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상담과 교육 프로그램 진행 중에 학교폭력 대책자치위원회가 구성되어 가해학생들의 행위에 대한 조치 및 징계가 이루어졌는데, 가해학생들이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이번 사례도 어른들의 강요된 사과나 빠른 사태해결을 위한 진행절차만이 이루어졌다면 피해학생에 대한 깊은 사과보다는 오히려 제3의 학교폭력 피해-가해자를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담임선생님과 학교의 여러 선생님이 사건이 아닌 학생을 먼저 보고자 하는 마음, 적극적으로 각각의 입장에서 충분히 아이들 이야기 들어주기, 즉각적으로 네트워크 이용한 전문가들 도움받기 등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신생아실 유리창을 통해 본 아기 중에 누가 나중에 학교폭력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될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이들과 가까이 있는 모든 어른들은 그들이 의도하든 안 하든 간에 상관없이 아이들의 성장발달에 도움을 주거나 아니면 왜곡시킨다"고 말했습니다. 부모와 교사들은 의식적이든 혹은 무의식적이든 간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해놓은 방식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시행되는 인성교육이 어른들에게도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책무가 되어 자기성찰과 가치를 창출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우리 모두가 공동체적인 인간상을 추구하는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새긴다면 함께 살아가는 시민의식을 우리 아이들에게 되살려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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