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필경의 에세이 산책] 춘추(春秋)

춘추는 봄과 가을을 아울러 이르는 이름이지만, 해(年)와 나이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춘추가 많으시다, 또는 젊으시다와 같이 어른이나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의 나이에 대해 높이는 말이기도 하다.

춘추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줄임말로 1년간의 시간 흐름을 뜻했다. 그래서 옛 중국에서는 역사 기록을 '춘추'라 했다. 공자가 단순한 궁중 역사 기록에다 자신의 역사의식과 가치관을 녹여 서술한 게 중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다섯 경전 중 하나인 '춘추'다. 그런데 왜 춘하추동을 줄여 춘추라 했는지 항상 궁금했다. 춘하 또는 하동이라 하지 않는가 말이다. 다시 말해 봄가을을 왜 역사라 했을까.

나는 아이 둘을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보내고 나서 도시 생활의 번잡함을 벗어나려고 2003년 가창면 행정리에 조그만 주택을 구입해 5년간 살았다. 지금도 늦봄에서 초가을까지 그곳에서 사는 편이다. 용지봉에서 직선거리로 남쪽 약 3㎞에 있는 아담한 농촌 마을이다. 출근할 때는 농촌 들판을 2㎞ 정도 지난다. 그 길에서 가창 주암산을 정면으로 본다. 그리고 대구~청도 국도에 오른다. 여기서는 용지봉과 주암산 사이를 꼬불꼬불 빠지면서 앞산의 뒷면을 감상한다.

나는 태어나서 줄곧 도시에서 생활했다. 봄꽃 구경이나 단풍 구경 같은 야외 놀이에서 자연을 그저 느꼈을 뿐, 시멘트와 아스팔트 도심에서는 가로수의 변화로만 계절을 느꼈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달랐다. 2월 말이면 황량한 논둑이나 밭이랑에서 쑥을 비롯한 초록 나물들이 얼굴을 내밀면서 봄을 예고한다. 3월 말이면 개나리가 노랗게 물들고 곧이어 벚꽃이 자태를 뽐낸다. 먼 산에는 진달래가 분홍빛을 낸다. 그리고 4월 말부터 갖가지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기 시작해 연초록, 살구색, 흰색이 파스텔화처럼 부드럽고 따스한 색깔로 물든다. 이때 색감은 하루하루가 확연히 다르다. 그러다 6월이 들면 나뭇잎의 색깔은 짙은 초록으로 고정되어 여름을 맞이한다. 여름은 더울 뿐 시각의 변화는 없다.

10월이면 그렇게 푸르던 나뭇잎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제 본색을 드러낸다. 울긋불긋 갖가지 색이 물들기 시작하면 가을은 익어 간다. 봄처럼 색감이 하루하루 다르다. 그러다 겨울이 되면 늘 그런 황량함이 이어진다.

보이는 게 날마다 새로우면 삶이 실감난다. 일반적으로 봄에는 생동감을 느끼며, 가을에는 완숙함을 느낀다. 하루하루 다르게 변하는 봄가을(春秋)을 바라볼 때 선인들은 이를 역사로 인식했나 보다.

이제 황금색이 물결 치는 들판에서 고개 숙여 익은 벼를 거둘 때다. 여름에서 성숙한 결실을 가을에 거두고 겨울 동안 다음의 봄을 맞이할 휴식과 준비를 하면서 올 한 해도 역사를 이루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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