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각자의 인연

대학 입시 수능시험이 채 한 달이 남지 않았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교육계 분들이나 사회 저명인사들의 인터뷰를 통해 수능 D데이를 세며 남은 시간 정리하는 방법이나 컨디션 조절'건강 관리하는 법 등을 알려주며 수험생을 격려합니다. 한국의 수험생은 국가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는 것처럼 비장한 각오로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사찰에서도 수험생을 위한 100일 기도를 봉행합니다. 수험생을 위한 100일 기도는 누구를 위한 기도보다도 열정적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모든 부모님들의 희망이기 때문이겠지요. 며칠 전 수험생 자녀를 둔 어머니가 고민을 상담하러 왔습니다.

"스님, 우리 애가 서울 기숙학원에서 재수를 하고 있습니다. 수능을 앞두고 마음이 많이 불안해서인지 '엄마 이번 해에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한 해 더 재수해도 돼요?' 하며 묻더군요. 좋은 대학 가겠다고 부모를 떠나 기숙학원에 있는 것도 측은한데 그런 질문을 받으니 갑자기 마음이 너무 아프고 부모로서 자신이 좋은 대학을 그토록 강요했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현재 경제력으로는 한 해 더 기숙학원을 보낸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애가 해보고 싶다는 데 어떻게 해서든 시켜보고는 싶지만…"하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어머니는 그 아이의 재수 뒷바라지를 위해 온 식구가 희생하고 근근이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같은 수능기도에 동참한 한 보살님은 "아니 애가 원하면 어떻게 해서든 시켜야지. 우리 애는 시켜준대도 하기 싫다고 적당한 대학에 들어갈 것이라면서 부모 속을 태운다"고 하면서 "자기 앞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아이가 참 기특하다"고 했습니다.

가끔 수험생 보살님에게 "아이들도 각자 타고난 기질이 있고 인연이 있으니 너무 부모님의 바람대로 키우다 보면 타고난 인연을 거슬러 갈 수 있다"고 말씀드리면 "스님은 자식이 없어서 모른다"고 일축해 버립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많은 부모님들의 생각이 비슷해 그러려니 합니다. 각종 매스컴뿐만 아니라 이구동성으로 입시 경쟁 속에 아이들을 너무 혹사한다는 말에 찬성하면서도 자기 자식들에게는 입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잘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수험생을 방해하지 않는 규칙 같은 것이 생길 정도로 말이지요.

인생은 각자의 몫이 따로 있습니다. 주위의 갖가지 꽃을 한 번 봅시다.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꽃은 없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화려하게 보이는 꽃들과 깊은 산 속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도 피고 지는 꽃들의 세계처럼 우리들의 인생도 각자의 인연에 따라 관계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아이의 인생에 개입해서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저렇게 되기를 강요한다면 그 아이가 살아야 할 인생은 어긋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또 보살님들은 자식을 낳아봐야 안다고 하실지 모릅니다. 타고난 성품을 잘 다듬고 보살펴서 그 아이의 인연이 수승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지 아이의 인생을 이 사회에 맞춰서 키우게 되면 결국 부모 자식의 인연으로 만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가 가정형편은 무시하고 재수 한 해를 더 한다고 특별한 인생을 살게 될까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한 해 더 재수하고 싶다는 아이가 기특한 아이일까요? 부모가 평소에 좋은 대학만을 고집하면서 아이에게 은연중에 강요한 것은 아닐까요?

보살님, 아이에게 이렇게 말씀해 보세요. "한 해 재수를 해보았으니 이제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서 대학에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어려운 가정형편도 솔직히 이야기하시고 "꼭 유명 대학에 입학하지 않더라도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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