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4월 13일 중국을 방문 중이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입에서 폭탄 발언이 나왔다. 우리나라 제일의 대기업 총수가 기자들을 모아놓고 '한국 경제는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취지로 말한 것이다. 이 회장은 "행정 규제와 권위 의식이 없어지지 않는 한 21세기에 우리가 앞서 나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며 우리나라 행정의 후진성을 작심하고 비판했다. 발언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이랬다. "정부는 행정 규제가 많이 완화됐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 정권 들어서고 나서도 크게 완화된 게 없습니다.…(중략) 솔직히 얘기하면 우리나라는 행정력은 3류급, 정치력은 4류급, 기업경쟁력은 2류급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김영삼정부의 청와대는 노발대발했다. 이 회장은 발언 후 예정돼 있던 대통령의 방미 수행경제인 명단에서 빠지는 등 한동안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국민은 달랐다. 경제인의 작심 발언을 속 시원하게 받아들였다. 국민의 속을 후련하게 한 것은 이 회장이 행정을 비판한 것도 있지만 한국 정치를 그보다 아래 단계인 4류로 절하한 탓이 더 컸다.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그때도 깊고 컸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지만 우리나라 정치는 여전히 4류다. 정확히 하자면 그 이하다. 그때보다 못하면 못했지 나아진 것이 없다.
서울대 한국행정연구소 부설 정부경쟁력연구센터가 최근 각 나라별 의회 경쟁력을 평가했다. 그래서 얻어진 결론은 우리나라 국회는 4류라는 사실이다. 19대 국회의원들이 잘 먹고 잘 놀았음을 새삼 확인해줬다. 우리나라 의원들은 경제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은 연봉을 챙겼다. 노르웨이,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의 의원 연봉은 1인당 국민소득의 2배가 안 됐지만 우리나라 의원 연봉은 이의 5.3배에 달했다. 우리보다 이 배율이 높은 나라는 34개국 중 일본(5.7배)과 이탈리아(5.5배)뿐이었다.
높은 연봉을 받으면 일이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사람 도리다. 그런데 이건 또 정반대였다. 받는 세비에 비해 일을 잘하는지(의회 효과성)를 따져 봤더니 형편없었다. 이건 거의 꼴찌(분석 가능한 27개국 중 26위)였다. 한국보다 의회 효과성이 떨어지는 나라로는 최근 여론을 의식, 상원의원 정수를 획기적으로 줄이며 의회 개혁을 추진 중인 이탈리아가 유일했다.
의원 입법과 국정감사를 통한 행정부 견제 기능은 의회가 존재하는 이유다. 우리 의원들은 이마저 포기한 듯하다. 19대 국회 들어 의원들은 모두 1만5천172건을 발의했다. 하지만 실제 통과한 법안은 1천746건에 지나지 않았다. 의원입법 10건 중 겨우 1건 남짓만 본회의를 통과했다. 출석도 제대로 않았다. 19대 국회 기간 중 본회의에서 의석을 지킨 의원은 평균 65%였다. 그마저 4명 중 1명꼴로는 눈도장만 찍고 도중에 자리를 떴다.
이뿐 아니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은 2015년 국감평가보고서에서 '역대 최악의 졸속 국감'이라 썼다. 매년 국정감사를 모니터링해 선정하던 '국정감사 우수 의원'을 올해는 아예 선정조차 않았다. 역대 가장 많은 피감기관과 관계자를 불러놓고선 정책감사가 실종되면서 호통치는 외에 행정부 견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 순간에도 국회의원들은 역사교과서 국정 전환 문제를 빌미로 국회가 아닌 거리에 나서 있다. 아직 실체도 없는 교과서를 두고 '친일 교과서니, 아니니' 하며 감정 다툼만 하고 있다. 일반 사기업 같으면 이쯤 되면 '먹튀' 논란이 나올 법하다. 차라리 '먹튀'가 나을지도 모른다. '먹고 튀기'라도 하면 다음에 다시 볼 일은 없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들은 먹기만 먹고 튈 궁리는 않는다. 도리어 또 하게 해 달라고 국민들을 조르고 있다.
이러니 우리 국회는 4류다. 그들만 4류인 것도 걱정인데 이들이 경제, 행정까지 4류로 물들일까 그것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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