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자연이 모두 건강한 세상을 꿈꾸며….'
송무학(44) 약초찻집 '마실' 대표는 7년 동안 험한 산을 누벼온 전문 심마니다.
송 대표가 심마니가 된 것은 중병에 걸렸던 것도, 사업에 실패한 것도, 약초꾼 집안이기 때문도 아니다.
고교 때부터 사회민주화와 변혁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이후 학생운동, 사회변화를 위한 정치활동에 몸을 던졌다. 정치적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 대구의 척박한 환경에서 야당의 싹을 틔우기 위한 활동에 전념했다. 그러던 중 정치인 노무현의 정치개혁과 분권'균형발전 철학에 매료돼 대구 노사모를 이끌었고, 결국 청년운동가로 참여정부 탄생에 기여했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막을 내리고,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철학을 모두 실현시키기도 전에 서거하면서 송 대표의 정치적 발걸음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정치를 떠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고향 산에서 뛰어놀며 나물과 약초를 뜯어 먹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자신이 가장 즐거워했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심마니로서 제2의 삶을 택한 송 대표로부터 자신의 정치적 삶과 자연인으로서의 삶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노사모 국장, 청와대로
고교 때부터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지켜보며 사회변혁과 민주화에 관심을 쏟은 송 대표는 대학에서도 민주화와 정치적 다양성이 주된 관심사였다.
대학시절과 이후 사회생활까지 가장 깊은 인연과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민청학련사건으로 복역한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재야 입당파인 이 전 수석이 주도한 대구경북지방자치연구소에서 일했고, 이후 이 전 수석이 대구에서 출마할 때마다 선거운동에 나섰다.
또 이 전 수석과 정치적 동지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과 가치에 공감하면서 노사모 대구 사무국장을 맡았고, 2000년 노 전 대통령의 후보경선 운동에 본격 뛰어들었다. 이 전 수석은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대구경북 경선을 총괄했다.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실무자로 참여해 뜻을 이룬 송 대표는 열린우리당 기획부장, 국회 비서관 등을 거쳐 2006년 여름부터 1년여가량 청와대 행정관으로서 참여정부 후반부와 함께했다.
그는 "정치개혁, 지방분권, 균형발전, 정부혁신, 균형외교, 남북 간 화해협력 등 참여정부의 의제는 지금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이라고 본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치 떠나 심마니로
청와대 행정관 초기 서울 송파구에 살던 그는 두 딸에게 어릴 때부터 경쟁에 내몰리는 교육 풍토에서 벗어나 자연친화적 생활과 더불어 창의성과 개성을 키워주기 위해 경기도 양평에 터를 잡았다. 양평군 서종면의 폐교위기에 몰린 전교생 47명의 분교를 주민, 학부모들과 어우러져 살려내기도 했다.
그는 "처음에는 시골에서 마냥 놀면서 잘 클 수 있을까 조금 걱정도 했지만, 두 딸이 창의력과 개성, 공동체의식 등을 키우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며 "지금은 스스로 학생회장을 할 만큼 당당한 딸을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참여정부가 막을 내리고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송 대표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사회개혁 운동에 투신할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더 이상 정치에 헌신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앞으로의 40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뜨거운 세대'(Hot Age)란 책에서 영감을 얻었다. 인생 후반부는 즐겁고 행복한 일을, 그것도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그는 고향 안동의 산에 올라 나물을 뜯어 먹고,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일을 좋아했었다. 민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팔겠다는 생각도 했으나, 내수면 어업허가가 만만치 않았다. 결국 산을 좋아하고, 나물과 약초 캐는 것을 좋아하던 일이 앞으로 할 일이라고 마음을 굳혔다.
그는 "좋은 자연산 약초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약초꾼과 동아리 회원들을 따라 2년여가량 약초산행을 하면서 서서히 '물미'가 트이기 시작했다. 산행과 전문서적 탐독 등을 통해 자신만의 노하우도 쌓았다. 2009년부터 혼자 산을 오르면서도 산행은 성공적이었다.
처음 겨우살이 산행으로 시작해 이후 부가가치가 높은 상황버섯에 몰두했다. 상황버섯은 1,000m 이상 고지대에 올라야 해 힘은 들지만, 한두 덩어리로도 수십만원의 고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젠 어느 산, 어떤 지형, 어떤 나무에 상황버섯이 많이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상황버섯을 섭렵한 그는 약초산행의 백미라고 꼽을 수 있는 산삼 캐기에 나섰다. 수없는 실패를 거듭한 끝에 이젠 두세 달에 한 번꼴은 산삼을 마주하는 행운을 얻는다.
그는 "산삼의 잎과 줄기 모양 등은 상당히 기하학적이면서도 생김새나 생장 과정이 사람과 너무나도 닮았다"고 말했다.
상황'말굽'송이'능이버섯 등 식용과 약용버섯류를 비롯해 더덕, 잔대, 하수오 등 뿌리약초, 헛개열매, 벌나무, 겨우살이, 산삼까지 송 대표의 약초산행 범위는 점차 넓어졌고 전문화됐다.
그는 약초 채취량이 늘고 가공기술까지 갖추면서 '두물머리 산삼'(www.omysansam.com)이란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약초찻집도 열었다. 청와대 행정관이 심마니로 완벽하게 변신한 셈이다.
◆뱀과 지뢰를 넘어
심마니로서의 삶이 마냥 즐겁고 신나는 것만은 아니다. 각박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분명 신명나는 일이다. 하지만 약초산행은 일반 산행과 달리 등산로가 아닌 산 경사면을 주로 타면서 숲과 덤불을 헤쳐나가기 때문에 상당한 체력이 소모된다. 낭떠러지나 나뭇가지 위에서 아찔한 경우를 당하기 다반사다. 지난해에는 나무 위에서 겨우살이를 채취하던 약초꾼이 떨어져 숨지는 사고도 일어났다.
약초산행에서 가장 많이 맞닥뜨리는 동물은 뱀이다. 멧돼지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여름철에는 말벌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 지난해 봄에는 강원도 양구의 한 야산에서 지뢰를 발견하기도 했다. 동료 중 한 명이 뇌관을 툭툭 건드렸지만, 다행히 터지지 않았다. 며칠 뒤 경찰, 군인, 폭발물제거반과 함께 산을 올라야 했다.
일반인들이 취미동아리나 주말산행을 통해 산을 헤집고 다니는 통에 일부 약초가 고갈되고, 자연산 약초를 채취한 뒤 유통하기가 만만찮다는 점 등도 전문 약초꾼들의 고충이다.
그는 "과거에는 입으로만 전해지던 약초의 효능이 요즘은 상당수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며 "산삼을 비롯한 약초에 대한 지식과 약초산행의 준비부터 채취,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하는 '심마니학교'를 열고 싶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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