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보험료도 못 내는 사람들

최근 보험연구원이 조사한 '보험소비자 설문' 결과에 따르면 12월 현재 가구당 손해보험 가입률은 고소득층(연간 소득 5천만원 이상)이 97.8%, 중소득층(3천만~5천만원 미만)이 94.3%, 저소득층(3천만원 이하)이 73.2%로 나타났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겨서 똑같은 보험금을 받더라도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층은 고소득층보다 훨씬 더 큰 효과를 체감하게 된다. 그런데 경제가 어렵다 보니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서민들이 오히려 보험과 멀어지고 있다.

중'저소득층 10가구 중 7, 8가구가 보험에 가입한 상황이니 그나마 최악은 면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시작이다. 사실 보험은 금융상품 중에도 '최후의 보루'로 꼽힌다. 중도 해약하면 무조건 손해여서 웬만큼 힘들지 않고는 보험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가계부채 총액이 1천166조원(올해 3분기 말 기준)을 돌파하면서 경제가 벼랑 끝에 몰리자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부터 보험을 깨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생명보험사들이 지급한 보험 해지환급금은 역대 최대 규모였다. 올해 9월까지 해지환급금은 무려 13조7천144억원이며, 해지 건수는 333만6천여 건이었다. 월평균 해지환급금은 1조5천240억원이었다. 1조5천억원대를 넘긴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보험의 계약유지율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10년 이상 납입해야 혜택을 보는 연금보험의 경우 거의 절반가량이 10년 내에 보험을 해약했다. 올해 상반기 생보사들이 판매하는 연금저축보험의 10년 평균 유지율은 53.14%에 그쳤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짚어봐야 할 것은 그렇게 해약한 보험의 납입금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보험을 해약해봐야 한 달에 아낄 수 있는 돈은 많아야 10만원 정도다. 물론 수십 만원짜리 보험 가입자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해약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금도 못 건지면서 고작 한 달에 10만원 남짓 아끼려고 보험을 해약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 아파트 값을 멀뚱멀뚱 지켜보다가 이래서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어 뒤늦게 은행 빚을 내서 집 한 채 장만한 사람, 무지갯빛 미래를 담보할 줄로만 알았던 아파트 한 채 때문에 하루하루 목구멍이 짓눌리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 도무지 더는 버틸 수 없어서 써냈던 명예퇴직 신청서를 새 출발을 위한 보증서로 착각하며 호기롭게 프랜차이즈 간판을 내걸었던 사람. 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래 위험에 대비한다며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진실한 사람'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이었다.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마구잡이로 풀어댔던 이유가 그저 선거를 겨냥한 단기 처방이 아니라 장기적 안목의 경제정책이라고 순진무구하게 믿었고, 돈 빌려서라도 집을 사는 게 보험보다 낫다고 판단했으며, 회사 때려치우고 동네 구멍가게라도 여는 게 창조경제에 도움이 될 줄 알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하루아침에 대한민국 경제를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시한폭탄인 가계부채의 '주범'이 됐으며, 창조경제의 힘을 믿으며 은행 창구로 냉큼 쫓아간 '멍청이'가 됐고, 점포 월세도 못 내는 바람에 보험까지 해약하는 대책 없는 '미련퉁이'가 돼 버렸다.

보험사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정말 급하지 않다면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서라도 유지하기를 권한다. 사실 보험은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에 더 필요하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처럼 맞는 말조차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악을 써서 욕을 해대도 제 밥그릇만 챙기는 국회의원들이 경제에 관심이 있을 리 없다. 넉 달쯤 뒤엔 다시 이들을 뽑아야 한다. 단 한 번 어긋나는 법 없이 매번 속는다. 그러고 보니 '병신년'(丙申年)이 다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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