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달구벌 줌-인! 대구의 숨은 명소를 찾아] 평안·치유의 공간, 성모당

골목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이어주는 소통 공간이었다. 기쁨과 분노, 만남과 헤어짐이 공존하며, 숱한 인간적 이야기가 이어지는 곳이었다. 지금은 그런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기에 골목에 대한 향수를 품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대구에는 그런 골목이 살아 있는 곳이 있다. 중구 남산동 일대다. 대구 중구청은 이곳을 특별히 '남산 100년 향수길'이라 명명하며 골목길 투어를 관광상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남산동 일대의 한적한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도심 속 명소로 자리 잡은 가톨릭 성지를 만날 수 있다. 천주교대구대교구 성유스티노신학교를 비롯해 성모당, 성직자 묘역, 성김대건기념관, 샬트르 성바오로수녀원 등의 건물들이 유럽 중세 풍경처럼 다가온다.

특히 성지 맨 위쪽에 위치한 성모당은 공원처럼 잘 가꾸어져 있어 연중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종교적 신념과는 무관하게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 머리를 식힐 휴식과 평안, 치유의 공간이 되기에 충분하다.

성모당의 역사는 19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대 교구장이었던 드망즈 주교의 허원(許願'하느님에게 하는 서원)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프랑스의 루르드 성모 동굴을 본떠 지은 성모당은 붉은 벽돌 건물로, 내부는 암굴처럼 꾸미고 그 안에 마리아상을 배치했다. 각 부분의 비례 구성이 아름답고 벽돌의 짜임이 정교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건물 윗부분에는 '1911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 1918'이라고 쓰여 있다. '1911'은 대구대교구청이 처음 생긴 해이고, '1918'은 드망즈 주교가 하느님께 청한 소원이 모두 이루어져 성모당이 완성되었음을 밝힌 것이라고 한다.

1990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된 성모당은 대구를 대표하는 근대 건축물로 손꼽힌다. 역사적인 이야기도 적지 않게 품고 있다. 우선, 대구를 대표하는 민족 시인 이상화의 작품 '나의 침실로'가 바로 이곳 성모당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시에서 부르짖는 '침실'은 정신적 안식을 찾고 활력을 주는 꿈과 부활의 동굴을 의미한다. 성모당의 동굴에서 시의 모티브를 삼았으며, '마돈나'는 곧 성모당의 성모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성모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상화 고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살린 어머니의 기도 역시 성모당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신학생의 신분으로 전쟁터에 끌려간 학도병 김수환은 오키나와의 이름 모를 섬에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우여곡절 끝에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그 모두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모당을 찾아 기도한 어머니 덕분이라는 것이다. 이찬우 성모당 담당 신부는 "성모당은 지역민들과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누구나 방문이 허락된 곳이긴 하지만 신성한 종교 성지이자 귀중한 문화재인 만큼 음주, 흡연, 음식물 반입은 금지돼 있다"고 설명했다.

성모당은 일요일, 설'추석 명절을 제외하고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오전 11시에 미사가 봉헌된다. 시간에 맞춰서 가면 종교의식도 참여할 수 있다. 성모당 방문은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누구나 가능하며, 도시철도 3호선 남산역 2번 출구로 나와 골목길을 10여 분만 걸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