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호국(護國)의 메아리<5>-제1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우수상

"바야흐로 10시가 되자 공격개시의 신호와 함께 밭으로 논으로 또 산으로 공격이 개시되었다. 부락 가까이 가니 태극기가 지붕 위에 나부끼고 만세소리 우렁찼다. 마을을 지날 때는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만세를 연창했다. 어떤 사람은 물을 떠오고, 또 어떤 사람은 술을 들고 와서 환영하는 사람도 많았다."

8. 38선을 넘다

즐거운 회식이 끝나고 심기일전한 우리들은 다음의 이동지가 궁금했다. 이침식사가 끝나자 화북중학교 교정에 전 중대원이 모여 출동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10시가 가까워지자 자동차의 엔진소리 요란하게 미군 트럭이 줄지어 교정에 들어서고 있었다. 10여대의 트럭이 들어서고서야 차의 시동이 꺼졌다. 차 한 대에 1개소대씩 승차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제부터는 도보행군은 하지 않으련가' 하는 기대 속에 우리는 즐겁게 차위에 올라탔다. 마냥 도보행군을 해 오던 우리는 기쁨이 앞섰다. 전 중대원의 승차가 완료되자 차는 선임운전병의 신호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으로 북으로 먼지를 일으키며 차는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름 모를 소도시를 지나고 어둠이 내리는 시각에 차는 충북 청주에 도착하였다.

깨끗해 보이는 시가지를 지나 어느 광장에서 우리는 하차했다. 광장 변두리에 우의천막을 치고 하룻밤을 지냈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미군 트럭이 또 광장으로 들어왔다. 바쁘게 승차해 또 북쪽을 향해 달렸다. 1시간여를 달리니 서울 근교였다. 대략 얽어매어 놓은 한강교를 지나 시내로 들어서니 서울역과 시청, 그리고 중앙청 건물과 남대문만 눈에 들어오고 모두 부서진채 거친 황야로 변해 있었다. 눈에 띄는 곳마다 포성의 잔상이 눈에 걸렸다. '이렇게 조국은 파멸돼 가는구나' 하는 허무감마저 들었다. 차가 멈추는 곳 역시 총포의 흔적이 완연하였다. 소대별로 정렬하자 중대장이 전황 설명과 작전상 유의사항을 하달했다.

"너희들이 서 있는 곳이 38 경계선이 지나고 있는 고랑포다. 후퇴일로에 있던 우리도 38선 이북으로 진격할 호기가 왔다. 국민 모두가 염원하던 통일도 우리가 진격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 삼천만이 한 역사속에 살아갈 기회를 우리가 조성하게 된다. 38선 이북의 공격은 명령 하달 즉시 이행될 것이다. 오늘 너희들 고향 하늘을 마지막으로 돌아보고 내일의 작전에 만전을 기하라." 중대장의 음성은 힘차고 굳세었다.

모두 그 자리에서 고향 예배를 하고 진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38선을 넘는 것인가?' 잠도 오지 않은 밤을 뜬눈으로 새우고 고랑포의 임진강변에 모였다. 멀리서 한순화 대대장이 지휘봉을 든채 차위에 올라 일장훈시를 하였다.

"오늘(10월 11일) 10시를 기해 우리 대대는 38선을 돌파하여 이북으로 진격한다. 처음 가는 곳이니 기강에 유의하라. 가는 곳은 우리가 가보지 않는 적지이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더라도 의무관의 검식후에 먹고 민간인과의 접촉을 금지한다. 민간인 속에 이북의 간첩이 잠입해 있음을 유의하라. 끝으로 제군들의 건강을 축원한다."

대대장의 훈시가 끝나자 소속 중대별로 공격개시 지점으로 이동했다. 우리 중대는 임진강을 건너 고랑포 입구지점에서 대기했다. 바야흐로 10시가 되자 공격개시의 신호와 함께 밭으로 논으로 또 산으로 공격이 개시되었다. 부락 가까이 가니 태극기가 지붕 위에 나부끼고 만세소리 우렁찼다. 마을을 지날 때는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만세를 연창했다. 어떤 사람은 물을 떠오고 또 어떤 사람은 술을 들고 와서 환영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북의 집과 주변 환경이 우리와 다를 바 없었으나 문 앞에 걸어 놓은 간판이 달랐다.

"적탄은 쉴새 없이 우리 전차 주변 밭이랑에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넓은 밭이랑에 몸을 담은채 사지를 쭉 뻗고 눈을 감아버렸다. 순간 무엇이 '쉬잇' 하더니 무거운 흙더미가 내 몸을 덮쳤다. 나는 적탄에 몸이 날아간 줄 알았다. 발가락을 움직이니 발가락이 성하고 손가락을 움직여보니 손가락도 움직였다. '옳지, 살았구나' 하고 몸을 일으키려하니 꿈쩍도 하지 않았다."

9. 감격의 평양입성(平壤入城)

이북 주민의 환영 속에 북진을 계속했다. 10월 12일 미 제6전차대대 C중대로부터 20대의 전차를 지원받게 되어 진격의 속도가 빨라졌다. 전차를 앞세운 우리는 황해도의 신계(新溪)와 수안(遂安)을 점령하고 평안남도에 진입하였다. 평양을 가까이 할수록 저항도 강했다. 우리가 상원(祥原)에 진입하려 할 때 적의 T-34전차가 도로를 따라 남하하면서 우리에게 반격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 곳 지형이 도로가 굽었기 때문에 충돌직전에서 멈추게 된 위급한 일도 일어났었다. 이때 선두 지프차에 타고 작전을 지휘하던 그로든(Tohn Growden) 중대장은 즉각 무전으로 전차의 산개 배치를 명령했다. 전차는 포격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전차를 타고 온 우리는 전차의 엄호부대라 전차의 곁을 떠날 수 없다. 전차에 매달려 있던 어떤 전우는 적의 조준을 피하려다 움직이는 전차에 깔려죽기도 했다.

전차의 엄호부대는 전차로부터 2m 이상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엄호규정 때문에 우리는 전차를 떠날 수 없었다. 장애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우리의 전차만 의지하려 하는데 전차는 쉴새 없이 움직여가며 적의 조준을 피하고 있었다. 적의 전차로부터 날아오는 직사탄은 많은 전·사상자를 냈다.

우리 경기사수인 강희일은 적탄에 한 쪽 몸의 반이 달아나서 10분도 견디지 못하고 낙명하였고, 분대장과 선임하사도 적탄의 파편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남은 사람들의 용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죽고 싶지 않는 것이 사람의 심정인가.

어떻게든 이 위기을 벗어나고 싶었다. 앞뒤를 살펴보니 직사탄을 피할 장애물은 없었다. 넓은 밭으로 이어진 광야에는 지난밤에 내린 비로 흙이 젖어 있었고, 넓은 밭이랑이 시야에 들어왔다. 적탄은 쉴새 없이 우리 전차 주변 밭이랑에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넓은 밭이랑에 몸을 담은채 사지를 쭉 뻗고 눈을 감아버렸다. 순간 무엇이 '쉬잇' 하더니 무거운 흙더미가 내 몸을 덮쳤다. 나는 적탄에 몸이 날아간 줄 알았다. 발가락을 움직이니 발가락이 성하고 손가락을 움직여보니 손가락도 움직였다. '옳지, 살았구나' 하고 몸을 일으키려하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찌된 일일까? 움직일 수 없으니…' 포탄은 쉴새없이 떨어지고 공중에는 아군의 공중폭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시간 넘도록 이어진 격전후 '상황 끝'을 알리는 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이지 않던 병력이 어디서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모두 소대본부에 모여 들고 있으나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10여분이 지났을 때 내 이름을 부르는 분대장의 외침이 귓전을 스쳤다. 대답을 해도 들리지 않은지 분대원이 밭으로 흩어져 나를 찾고 있었다. "황인발, 황인발" 이때 경주에서 온 송일룡이 내 이름을 부르며 지나가기에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송일룡" 하고 소리쳤다. 먼 곳에서 내 옆으로 다가오던 송일룡이 달려왔다. 내손을 잡고 내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꼼짝하지 않았다. "삽, 삽 가져와." 그는 외쳤다.

이윽고 서너명의 분대원이 삽을 들고 달려왔다. 내 몸을 덮친 흙을 파헤치고 나를 일으켰다. 그때 '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는 1m 이상의 구덩이가 생겼으니 아마도 적 포탄의 흔적이 아닌가했다. 비에 젖은 땅이 물러서 적탄이 폭발하지 않고 땅속 깊이 들어가 불발이 된 것 같았다. 이렇게 사경을 벗어난 나는 45호 전차에 올라 타고 북진을 계속했다. 상원의 넓은 들판을 지나 지동리(智洞里)로 향하는 전차소리는 더욱 웅장하게 들렸다. 곳곳에서 주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와 국군환영만세를 불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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