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멜로드라마의 거장 토드 헤인즈 감독
#1950년대 뉴욕, 터부시되던 동성애 통해
#겉모습 아닌 진짜 사랑 찾아가는 과정 그려
이달 28일 개최될 아카데미 시상식에 맞추어 노미네이트된 작품들이 속속 개봉하며 영화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캐롤'은 칸영화제에서 루니 마라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다. 아카데미에는 케이트 블란쳇이 여우주연상, 루니 마라가 여우조연상에 오른 것을 비롯해 촬영상, 각색상, 음악상 등에 후보로 올랐다. 아카데미에서 연기상을 수상할 것으로 많은 전문가가 예측하고 있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한 뉴퀴어 시네마(성소수자를 다룬 새로운 영화)의 새로운 기수로 각광을 받았으며, '벨벳 골드마인'(1998), '파 프럼 헤븐'(2002), '아임 낫 데어'(2007) 등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와 고전적 스타일의 멜로드라마를 만들어왔다.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한 성실한 가정주부가 남편의 냉랭함과 이웃 흑인 남자의 친절함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멜로드라마 수작 '파 프럼 헤븐'과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이다. '캐롤'은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과 함께 고전적이고 우아한 스타일의 멜로드라마 형식을 갖추었다. 인공성과 작위성을 도드라지게 하는 독특한 토드 헤인즈만의 스타일이 있는데, 연극성이 가미된 과장된 연기와 시각적으로 현란한 색채의 사용 안에서 진실한 감정의 본체를 뽑아내는 개성이 살아난다. 두 명의 아름다운 여성이 주인공이다. 영화는 여자들 간의 사랑 이야기를 전하는 퀴어 멜로드라마다.
원작은 '리플리'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금의 값'이란 소설이다. 그녀는 1950년 소설 '열차 안의 낯선 자들'로 데뷔하며 주목을 받았고, 알프레드 히치콕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생활고로 백화점 장난감 가게에서 일하게 되고 그곳에서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나 한눈에 사로잡히게 된다. 소설은 작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녀가 남긴 유일한 로맨스 소설이다.
1950년대 뉴욕, 맨해튼 백화점 점원인 테레즈(루니 마라)와 손님으로 찾아온 캐롤(케이트 블란쳇)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거부할 수 없는 강한 끌림을 느낀다. 캐롤은 하나뿐인 딸을 두고 이혼 소송 중이고 테레즈는 헌신적인 남자친구가 있지만 확신이 없다. 두 사람은 각자의 상황을 잊을 만큼 통제할 수 없이 서로에게 빠져들게 되고 감정의 혼란 속에서 서로가 인생의 마지막에, 그리고 처음으로 찾아온 진짜 사랑을 확신한다.
동성애가 정신질환이나 범죄로 터부시되던 1950년대에 계급과 사회적 위치가 다른 두 여성이 만나 순수한 감정을 서로 나누지만, 이들을 둘러싼 환경적 제약은 만만치 않다. 영화는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 같은 멜랑코리한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프로덕션 디자인에 공을 들인다. 상류층 가정주부인 캐롤이 걸친 의상과 소품들에서 1950년대의 복고적 감성이 되살아나고, 사진작가를 꿈꾸는 테레즈가 찍은 사진 컷들은 당대 뉴욕을 기록한 역사적인 여성 포토그래퍼들의 사진을 떠올리게 하는 예술적 감성으로 가득하다.
두 여성 모두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있지만, 이들 남성은 여성을 자신의 남성성을 살려줄 하나의 액세서리 정도로 생각하며 그녀들의 감정에는 무지하다. 캐롤이 테레즈의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테레즈가 캐롤의 부서질 것 같은 감수성에 반응하는 것을 통해, 영화는 사랑이 그럴듯한 이벤트나 외양이 아니라 섬세한 감정의 결을 주고받는 것임을 강조한다.
또한 가정주부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하는 캐롤의 욕망과, 남자친구와의 안정적인 관계 대신 직업 세계를 선택하고 싶어하는 테레즈의 욕망은 보수적인 성역할을 고정화시키는 사회에 저항하는 무기다. 이 두 여성의 선택은 독립적인 일반 여성들의 욕망을 대변한다. 이는 여성들이나 보는 장르라고 폄하되곤 하는 멜로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전복성으로, 많은 여성팬들의 멜로드라마에 대한 애정을 함부로 여겨서는 안 될 이유다.
여성들 간의 사랑이라는 특별한 이야기이지만, 영화는 보편적인 사랑의 감정과 분위기를 보여줌으로써 보편적인 영화 팬들에게도 호소력을 발휘한다. 2000년대 이후 멜로드라마가 한국영화계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요즘, 사람 사이의 내밀하고 진정한 관계와 섬세한 감수성의 결이 시각화될 때 얼마나 큰 재미를 안겨줄 수 있는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새로운 고전으로 각인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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