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북한과 쿠바

한국외국어대(스페인어 전공) 졸업. 전 한국스페인어문학회장. 전 외교부 중남미 전문가 자문위원. 현 한·칠레협회 이사
한국외국어대(스페인어 전공) 졸업. 전 한국스페인어문학회장. 전 외교부 중남미 전문가 자문위원. 현 한·칠레협회 이사

지도자 권위 아닌 국민 중시하는 쿠바

60년 적대관계 美에 과감히 문호 개방

항공기 운항·인터넷 보급 윈-윈 추구

北은 아직도 공포 정치로 권위 내세워

요즈음 국제 뉴스에서 핫 이슈로 자주 등장하는 나라는 일당 공산 독재국가인 쿠바와 북한이다. 쿠바는 미국과의 외교 관계 재개와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 발표로, 북한은 핵실험과 로켓 발사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옛 소련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바 있는 이 두 나라는 표면적으로는 지금도 형제국으로서 우의를 다지고 있으나 그 행보는 전혀 딴판이다. 닮은꼴 공산국가인 듯싶으나 쿠바는 화해를 지향하는데 북한은 자위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의를 다지고 있다. 얼핏 보면 소련 붕괴 후에 두 나라가 쭉 같은 길을 걸어오다가 근래 들어서서 서로 방향을 달리한 듯 보인다. 그러나 사실 오래전부터 이 둘은 전혀 다른 정치 문화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정서적으로는 같이 갈 수가 없는 사이이다.

필자가 처음 쿠바를 찾았던 1996년도에 본 거리의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다. 도심 전체가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도 하바나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대부분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생각보다 지독히도 찌들어 있어 실망스러웠다면, 그 넓은 거리 이곳저곳을 아무리 헤매고 다녀도 '위대한 지도자 카스트로 만세' 같은 구호는 볼 수가 없었던 점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쩌다 마주친 구호는 고작 '사회주의 아니면 죽음을!' 정도였다. 북한에서는 근현대사 역사 발전은 오로지 '영명하신 원수님과 그 가족'의 혁혁한 투쟁 덕이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쿠바에서는 비록 60년 가까이 형제가 대를 이어 1인 독재 정치를 펴고 있으나 어딜 가도 그들의 흉상 하나 없다. 오히려 그들과 함께 혁명을 한 체 게바라를 기리는 조형물이나 책자가 더 눈에 띄고, 150년 전의 정치지도자인 호세 마르티를 영웅으로 모시고 있었다.

당시에 만났던 쿠바인 중에 김일성종합대학에 5년간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있었다. 위와 같은 나의 첫 쿠바 방문 소감을 이야기하자 유창한 북한말로 "에이, 북조선은 진정한 공산주의도 아니야요!"라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제대로 이어받지도 않았고, 그들이 위한다고 하는 인민들의 생활은 쿠바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이다. 3일간 나의 안내를 맡았던 국립 하바나대 의대생의 표현대로 쿠바인들도 국가 통제 경제로 인한 비효율적 생산 시스템 때문에 물자 부족으로 늘 곤궁하고 배가 고프기는 하지만 적어도 강압적인 분위기나 행사 동원 같은 일로 국민을 지치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후 몇 차례 쿠바를 다녀오면서 한 번도 감시를 당한다거나 하는 불쾌한 경험도 없었다. 거리의 쿠바인들에게서 비록 옷차림은 남루해도 경직된 모습, 찡그린 모습보다는 친절하고 밝은 미소를 훨씬 더 많이 접할 수 있다. 도시 대항 야구 결승전에서 이겨 1주일간 전 시민이 휴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광장에 모인 인파가 종이컵에 맥주를 따라 건배하며 열광하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미국, 멕시코, 쿠바 등 3국 견학을 다녀온 우리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가장 인상적이고 살고 싶은 나라가 쿠바란다. 번듯한 인프라를 갖춘 미국이나 화려한 휴양시설을 갖춘 멕시코 해안 도시를 택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는 경제적으로 궁핍하나 정신적으로는 여유 있는, 그리고 맑은 카리브해 바닷가에서 꾸밈없이 음악과 춤을 즐길 수 있는 그들의 삶의 모습에 반했기 때문이리라.

쿠바에서는 이런 현상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북한은 아버지, 할아버지 때보다 더 희한한 방식으로 숙청을 하면서 공포 정치로 권위를 내세우고 있다. 쿠바는 지금 정치적 명분이나 지도자의 권위가 아닌 국민의 체면을 위해 60년 적대국인 미국에 과감히 문호를 열고 있다. 하루에 100편 이상 미 국적 항공기가 쿠바로 운항하게 되면, 인터넷망을 대폭 보급한단다. 엄청난 변화요, 그야말로 윈-윈 전략이다. 북한 지도자들도 로켓 발사대보다는 이웃 여러 나라의 항공기가 동시에 착륙할 수 있는 활주로와 누구나 상시 접근할 수 있는 와이파이망을 늘려서 모두가 승리하는 그런 평화를 지향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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