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만병통치주의

제프리 삭스 하버드대 교수는 명성이 자자한 세계적인 경제학자다. 그러나 그 명성에 오점을 남긴 큰 실수도 저질렀다, 바로 소련 붕괴 후 러시아 경제체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하려면 국유기업을 민영화해야 한다고 러시아에 권고한 일이다. 그 결과는 러시아 국민에게 국유기업의 자산이 골고루 분배된 것이 아니라 극소수의 부자들에 의한 독점이었다.

그는 국유기업의 주식을 노동자들이 보유하게 되면 경제체제가 자연스럽게 시장경제로 이행할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 믿음에 따라 주식을 노동자들에게 나눠줬지만, 그들은 돈 몇 푼에 주식을 부자에게 팔아버렸다.

노동자들은 왜 자기 주식을 팔아버렸을까. 자본주의 경제를 경험해보지 않아 주식이 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주식은 자신이 기업 소유주의 일원임을 보여주는 증서가 아니라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게다가 당시 러시아 노동자는 매우 가난했다. 이런 상황에서 생필품을 살 수 있는 '진짜 돈'과 주식을 바꾸자는 부자들의 제의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일 수밖에 없었다.

삭스는 이를 전혀 몰랐다. 국유기업의 주식만 노동자에 나눠주면 만사가 잘될 것이란 '만병통치주의'에 빠진 탓이다. 삭스의 민영화 처방을 '충격요법'이라고 하는데, 러시아인의 삶에 엄청난 충격만 줬을 뿐 치료 효과는 전무했다. 공산체제에서는 모두가 가난했지만 이젠 극소수는 떼부자가 되고 나머지는 더욱 가난해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테러방지법 반대도 이런 '만병통치주의'의 산물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논리는 국정원에 테러정보수집권을 주지 않으면 권한 남용과 인권침해 문제가 원천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전과'를 감안하면 이해되는 구석이 있다. 문제는 국정원이 아니라 국민안전처에 정보수집권을 주면 권한 남용이나 인권 침해 우려는 완전히 해소될 것인가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렇게 보고 있다. 국민안전처를 선한 조직으로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조직이든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것은 없다. 하는 일이 조직을 선하거나 악하게 만들 뿐이다. 정보수집권을 가진 국민안전처가 또 하나의 국정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얘기다. 그런 점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생각은 너무 순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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