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이은 은메달 쾌거' 손연재, 전략의 승리

맞춤 프로그램+탄탄한 체력으로 개인 최고점 경신 행진

손연재(22·연세대)가 지난해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국제체조연맹(FIG)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종합에서 69.998점으로 11위에 그쳤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손연재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연재는 올 시즌 보란 듯이 일어섰다.

손연재는 지난주 모스크바 그랑프리 개인종합에서 72.964점으로 개인 최고점을 갈아치우며 첫 은메달을 따내더니 26~27일(현지시간) 핀란드 에스포에서 열린 올 시즌 첫 FIG 월드컵에서 또다시 개인 최고점(73.550점)을 작성하며 올 시즌 첫 두 국제대회에서 연속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손연재의 에스포 월드컵 개인종합 은메달은 다가올 올림픽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꼽히는 간나 리자트디노바(우크라이나)와 멜리티나 스타뉴타(벨라루스)를 모두 제치고 거둔 성과라서 더욱 눈길이 간다.

손연재의 잇따른 쾌거는 전략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손연재는 리우 올림픽을 맞아 새 프로그램을 짜면서 영리하게 전략을 폈다.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으면서도 높은 점수를 기대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실수의 리스크가 적은 동작 위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지난 1월 국가개표 선발전에서 처음으로 새 프로그램을 가동한 뒤에는 다시 자신의 능력치에 맞게 프로그램을 수정하고 다듬었다.

특히 손연재는 겨우내 체력 훈련을 열심히 한 결과 동작이 빨라지고 정확해지면서 감점 요인이 사라졌다. 지난해만 해도 손연재는 턴하다가 중심을 잡지 못해 비틀거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지만, 복근과 허리 등 속근육을 강화한 올 시즌에는 턴이 훨씬 더 정확해지고 동작 자체가 깔끔해졌다.

손연재의 성장은 기록표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FIG 공인 대회 기준으로 지난 시즌까지 손연재의 개인종합 최고 점수는 작년 8월 소피아 월드컵에서 기록한 72.800점이었다.

리듬체조 점수는 난도(D·Difficulty) 점수 10점, 실시(E·Execution) 점수 10점으로 나뉘는데, 당시의 점수표와 에스포 월드컵 점수표를 비교하면 난도 점수가 크게 높아진 것이 확연하다.

손연재는 소피아 월드컵 후프에서 18.200점(D 9.050점+E 9.150점), 볼에서 18.100점(D 8.950점+E 9.150점), 곤봉에서 18.250점(D 9.250점+E 9.000점), 리본에서 18.250점(D 9.100점+E 9.150점)을 받았다.

이번 에스포 월드컵에서는 후프 18.400점(D 9.200점+E 9.200점), 볼에서 18.350점(D 9.150점+ E 9.200점), 곤봉에서 18.400점(D 9.200점+E 9.200점), 리본에서 18.400점(D 9.200점+E 9.200점)을 받았다.

두 대회를 비교해보면 곤봉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으로 난도 점수가 높아진 것이 개인 최고점 경신으로 이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생길 수 있는 의문이 하나 있다. 리자트디노바와 스타뉴타가 겉으로 보기에는 손연재보다 훨씬 더 고난도의 연기를 하는데 어떻게 손연재의 점수가 더 높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난도 점수 계산 방식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리듬체조 선수들은 경기 시작 전 심판진들에게 난도표를 제출한다. 그러면 심판진은 이 난도표를 보고 선수가 계획한 난도를 얼마나 정확하게 수행했는지를 보고 점수를 매긴다. 10점 만점에서 점수를 깎는 방식이라고 봐도 무관하다.

따라서 아무리 난도가 높고 독창적인 연기를 펼치더라도 그 연기가 정확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예를 들어 리자트디노바는 수구를 공중으로 띄워놓고 몸을 구르면서 수구를 잡는 리스크 동작에서 손연재보다 1~2바퀴를 더 구른다.

하지만 수구 낙하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해 한두 발이 앞으로 더 나가는 실수가 나오면 그대로 0점 처리가 된다. 대신 손연재는 리자트디노바보다 차라리 한 바퀴를 덜 돌고 그보다 낮은 점수를 받을지언정 자신의 난도 점수를 고스란히 챙기는 방식을 택했다.

수구 조작의 독창성을 겨루는 마스터리나 점프, 턴 동작에서도 마찬가지다. 리자트디보나와 스타뉴타가 손연재보다 높은 점프를 구사하고 더 많은 턴을 해도 점프 때 다리가 정확하게 벌어지지 않거나 턴 시 다리가 허리 아래로 처지면 심판은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

아무리 난도 자체가 높아도 여기서 실수가 나오면 차라리 그보다 낮은 난도를 정확하게 구사하느니만 못한 것이다.

실제로 이번 에스포 월드컵에서 각각 3위와 4위를 차지한 리자트디노바(후프 9.150점, 볼 9.150점, 곤봉 9.000점, 리본 9.050점)와 스타뉴타(후프 9.200점, 볼 8.950점, 곤봉 9.200점, 리본 9.200점)의 난도 점수는 손연재보다 낮게 나왔다. 그리고 그것이 메달 색깔을 결정했다.

리자트니노바와 스타뉴타와 같은 유럽 선수들은 실수하더라도 높은 난도에 도전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것이 스포츠인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리우 올림픽에 선수 인생을 건 손연재는 자신에게 맞는 난도를 정확하게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과 전술의 차이다.

리듬체조 세계 최강국인 러시아는 새로운 규칙에 빠르게 적응하고, 전술·전략에 능하다. 이곳에서 리듬체조를 배우고 세계적인 코치 옐레나 리표르도바 코치의 지도를 받는 손연재는 점수를 잘 얻을 수 있는 영리한 프로그램을 들고 올 시즌을 맞았다.

손연재는 자신의 특기인 포에테 피봇의 난도와 비중을 높이고, 리듬 스텝을 빈틈없이 채워넣었다. 어려운 동작에 도전했다가 실수를 해서 점수가 깎이느니 차라리 쉬운 동작이라도 정확한 수행으로 챙길 수 있는 점수를 모두 챙기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겨우내 부단한 훈련을 통해 기른 체력은 4종목 모두 집중력 있게 연기할 수 있도록 한 바탕이었고, 이 모든 작전을 가능하게 한 열쇠가 됐다.

연합뉴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