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로진학 상담실에서] '흙 수저' 공자

공자는 '흙 수저'였다. 칠십이 넘은 아비와 십 대의 어미가 들판에서 '야합'(野合)하여 공자를 낳았다. 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자랐다. 공자의 직업은 '유'(儒)였다. 당시의 '유'는, '선비'가 아니라,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직업. 노동만큼 대가가 지불되지 않고 매장한 무덤을 도굴해야만 생계가 가능했던 비천한 직업이었다. 공자의 생애는 (신영복 저. 돌베개. 2016)을 참고함.

그 '흙 수저' 공자가 어느 날, 죽은 사람에게도 예의를 다하자고 했다. 먹고살기 바쁜 수하들에게 당연히 이 말은 비웃음과 반발을 샀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니었다. 수하들도 사람이기에 사람인 공자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고픈 배를 쓸어안고 무덤을 지켰다. 공자의 무리가 매장한 무덤은 도굴의 위험 없이 무사했다. 이후, 사람이 죽으면 모두 공자의 무리에게 찾아와 매장을 부탁했다. 그리고 사람을 위하는 그의 인본주의 철학에 깊이 공감했다. 그 후, 천한 직업이었던 '유'는 군자, 선비, 스승이라는 고귀한 직업으로 승격했다. 비천한 직업이 진로철학을 갖추어 존귀한 직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흙 수저'였던 공자가, 이천오백여 년의 장구한 역사를 두고 층이 겹겹이 쌓이는 인문 정신의 '금 수저'로 끝없이 되살아나 성장하고 있는 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자존감이다. 천한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신을 '사람으로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여긴 공자의 마음이, 똑같은 마음을 가진 수하들을, 동시대 사람들을, 시공간을 넘어서는 인류를 움직인 것이다.

오늘날 모든 학생은 '희망 진로', 아니 정확히 '희망 직업'으로 고문을 당한다. 희망 직업이 없다면 꿈이 없다고 힐난하고, 있다면 성취에는 경쟁이 따르는 만큼 더 노력하라고 다그친다. 꼭 그렇게 끝판을 강조해야 하는가? 학생 개인을, 그 자체로 자존감 있는 존재로 키워주고 다양한 가능성의 덩어리로 보살펴 줄 수는 없는가? 철저히 자본과 경제의 법칙을 따르는 희망 직업에 개인을 묶어봤자, 그 개인의 끝판은 효율과 경쟁에 끝없이 시달리는, 자본의 노예가 될 뿐이다. 공자의 정신으로 톺아보면, 선택과 집중을 강요하는 오늘날의 진로 교육은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구조적으로 양산할 뿐이다.

적성과 흥미를 고려해서 직업을 찾는 일도 좋다. 목표가 없는 것보다 구체적 목표를 가질 때만이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자존감을 회복하여 올바른 진로 철학을 가지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진로 철학을 제대로 갖출 때 직업에는 귀천이 없어진다. 아이들에게 정신의 공자(자존감)를 찾아주자. 공자는 이천오백여 년 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의 모든 학생이 살아 있는 정신의 '금 수저' 공자이다.

황영진 다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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